이철민 기자

국민 다수가 기독교인인 남(南)수단에서 남자가 여러 아내를 두는 중혼(重婚)은 흔한 일이다. 22년간의 내전 끝에 2011년 독립한 이 나라에선 남녀 성비(性比)가 1대3인 탓도 있지만, 중혼은 그 이전까지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고위 관리나 부자일수록 아내 수는 '신분 상징'이 됐고, 작년 2월 한 군벌은 112명의 아내를 뒀다. 현지 매체 '데일리 사바'는 "더 많은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하다 보니 더 부패하고, 결혼 기회를 잃은 젊은 남성들의 사회 불만이 쌓인다"며 "중혼은 사회악"이라고 주장했지만, 모든 결혼의 40%가 중혼인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중혼은 2010년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 나이지리아와 이라크·시리아를 휩쓴 이슬람 테러에서도 한 주요 원인이었다"고 진단했다. 중남미 아이티와 인도네시아 일부 지역에서 범죄가 난무한 것도 같은 이유라는 것이다. 미 민간 교육연구단체 '평화를 위한 기금(Fund for Peace)'이 집계한, 전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국가 20위는 모두 '전체 기혼 여성의 10~50%가 중혼'인 나라들이었다고 이 잡지는 분석했다. 2012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의 한 연구는 "중혼이 허용되는 사회에선 강간·납치·살인·특수강도가 훨씬 많았다"며 "문화 진화적 측면에서 일부일처제는 남성들 간의 경쟁과 사회문제를 줄였다"고 밝혔다.

“내 아내는 4명” - 나이지리아의 전통 왕국인 오요 왕조의 라미디 아데예미(80) 왕이 2014년 9월 네 명의 아내와 런던의 한 백화점을 방문하고 있다.

소수의 남성에게 편중된 부(富)도 아프리카·중동·동남아 일부 지역의 중혼을 부추긴다. 남수단의 가난한 청년이 소 30~300마리에 '팔리는' 어린 신부 가격을 마련할 방법은 없다. 지난달 8일 남수단에선 부족 간에 소 떼 강탈을 둘러싸고 60여 명이 죽었고, 상대 부족 젊은 여성들은 성폭행·납치당했다. 예일대의 힐러리 메트페스 교수(정치학)는 한 논문에서 "중혼 사회에서 어린 신부 의 몸값은 계속 올라가, 좌절한 청년들은 정치적 목적을 띤 폭력집단에 가담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이슬람 테러집단도 이 점을 노린다. 아프가니스탄의 테러단체는 신입대원에게 형제의 '결혼 비용'을 제공하고, 나이지리아의 이슬람 테러단체 '보코하람'은 대원에게 아내부터 주선한다. 납치한 여성들이다. 중동의 테러집단 IS(이슬람국가)도 신혼집을 꾸밀 수 있게 1500달러를 제공한다. 이슬람 테러 대원들이 순교 시 천국에서 기다리는 '처녀 72명'만 바라고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비싼 돈에 팔려 온 어린 신부가 늙은 남편 앞에서 '인권'을 얘기하기는 어렵다. 작년 11월, 영국 교육기준청(Ofsted)이 초·중등 이슬람학교 교재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아내는 성관계를 거부할 수 없으며, 거부하는 아내는 때려도 된다"는 내용이 드러났다. 2014년 사하라 이남 29개 아프리카 국가의 어린이 24만명을 조사한 결과에선, 다른 요소를 감안해도 중혼 가정의 아이들이 일부일처제 가정의 아이들보다 어린 나이에 7~11배 더 많이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