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경 법조전문기자·변호사

강원도 속초시에 있는 법무법인 '서하'는 구성원 변호사가 모두 한 가족이다. 이 지역에서 20년 넘게 혼자 변호사로 활동하던 조동용(66) 변호사가 2012년 1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아들 근호씨, 며느리 김하늬씨를 끌어들여 법무법인을 만들었다. 법무법인 인가(認可)를 받기 위한 필요 요건인 '세 명 이상 변호사'를 모두 가족으로 채운 셈이다. 2014년에는 3회 변시(辨試)에 합격한 딸 윤아씨까지 합류했다. 조 변호사는 조만간 아들 근호씨에게 대표변호사직을 물려줄 계획이라고 한다.

이런 '가족 로펌'은 아직 드문 현상이다. 하지만 그와 유사한 모습이 법조 타운인 서울 서초동에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로스쿨 교수로 재직하던 한 변호사는 최근 새로 법무법인을 개업하면서 변호사인 딸이 합류했다. 30년 가까이 서초동에서 일한 한 원로 변호사도 지난해 변시에 합격한 딸과 함께 일하고 있다. 법무법인 형태는 아니지만 부녀(父女)가 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변호사 수가 2만3000여 명으로 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 크다. 최근 갓 개업한 변호사들은 사건 수임 자체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변호사 업계에선 사무실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저 수임 건수를 월 2건으로 보는데 지난해 상반기에는 평균 1.69건에 불과했다. 초임 변호사들은 더 열악하다. 그런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변호사 부모와 자녀가 동반 개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동반 개업한 초임 변호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무엇보다 아버지가 개척한 인맥과 영업망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는다. 덕분에 다른 초임 변호사보다 업계에 안착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업무를 빨리 배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한다. 서울의 공공기관에서 일하다 춘천에서 아버지와 함께 개업한 변호사도 "실무를 제대로 배워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 세대들도 이를 굳이 마다하지 않고 있다. 한 중견 변호사는 "기왕에 함께 일할 변호사를 구할 바에는 남보다는 믿을 수 있는 자녀를 선호하지 않겠느냐"며 "앞으로 변호사 업계에서도 일을 가업(家業)처럼 이어가는 경우가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