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는 올해 1호·2호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식이 열렸다. 아너소사이어티는 1억원 이상 기부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올해 1호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자는 퇴직 소방관인 강상주(63)씨. 하지만 2호 가입자는 볼 수 없었다. 2년 전 소방관으로 근무하다 구조 활동 중 순직한 강씨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강씨는 이날 자신의 이름으로 1억원, 아들의 이름으로 1억원을 기부했다. 그는 "지금 곁에 없지만, 아들은 하늘에서 누구보다 이 순간을 기뻐할 것"이라고 했다.
강씨의 아들 기봉(당시 29세)씨는 2016년 10월 울산 온산소방서 119안전센터 구급대원으로 근무 중이었다. 태풍 차바가 왔을 때 "집중호우로 강물이 불어났는데, 차 안에 사람 2명이 고립된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차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기봉씨는 구급차로 복귀하던 중 갑자기 덮친 강물에 휩쓸렸다. 실종 23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소방관으로 근무한 지 1년 6개월 만의 일이었다.
아버지 강씨는 "나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강씨는 고향 제주에서 31년을 소방관으로 재직하다 2014년 6월 정년퇴직했다. 생계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근무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그들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다.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들과 호스피스 병동 등을 찾아 자주 봉사 활동을 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녹조근정훈장도 받았다.
제주에서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백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아들이 돌연 소방관이 된 건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며 가족들 몰래 시험을 쳐 소방관이 됐다고 한다. 적은 월급을 쪼개 다달이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주던 든든한 맏아들이었다. 강씨는 "그런 아들이 자랑스럽고 기특하지만, 소방관이 된다고 했을 때 말리지 못한 게 가끔은 후회되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했다.
아들이 숨진 후 강씨는 "소방관이 돼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던 아들의 뜻을 살릴 방법을 고민했다. 더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으로 기부를 택했다. 아들의 사망 후 여러 곳에서 보내온 성금에 부부(夫婦)가 생활비를 아껴 모은 돈을 보태 기부금을 마련했다. 강씨는 "여러 어려운 이웃들에게 혜택이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아너소사이어티에서 2018년 첫 가입자이자 전국 소방관 중 첫 가입자, 첫 부자(父子) 소방관 가입자가 됐다. 강씨가 기부한 성금은 제주지역의 저소득층 청소년 교육과 자립 등 환경 개선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