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사격훈련을 하던 K-9 자주포에서 불이나 장병 3명이 숨진 화재사고는 장비 오작동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K-9 자주포 사고 경위를 조사해온 민·관·군 합동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26일 국방부에서 이 같은 내용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위는 “승무원이 격발 스위치를 작동하지 않았음에도 격발 해머 및 공이의 비정상적인 움직임, 중력 및 관성 등에 의해 뇌관이 이상 기폭해 포신 내부에 장전돼 있던 장약을 점화시켰다”고 사고원인을 설명했다.
조사위는 “폐쇄기가 내려오는 중 뇌관집과 격발 장치의 일부 부품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해 뇌관이 삽입 링 화구에 정상적으로 삽입되지 않아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며 “완전히 닫히지 않은 폐쇄기 아래쪽으로 포신 내부에 장전돼 있던 장약의 연소 화염이 유출됐다”고 덧붙였다.
폐쇄기는 포를 발사할 때 발생하는 연기나 화염을 차단해서 포신 앞쪽으로 분출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장약에 불이 붙어도 폐쇄기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화염이 포 내부로 쏟아지지 않는다.
조사위는 이어 "유출된 연소 화염이 바닥에 놔뒀던 장약을 인화시켜 급속 연소되면서 승무원이 순직하거나 부상을 입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지난 8월 18일 강원도 철원에서 사격훈련을 하던 K-9 자주포에서 화재가 발생해 내부에 있던 장병 3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사고 직후 육군은 민·관·군 합동조사위를 구성해 약 4개월 동안 사고 경위를 조사했다.
조사위는 “조사결과를 기초로 안정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후속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며 “승무원용 난연 전투복 120벌을 12월 안에 우선 지급해 내년 2월까지 부대 시험 이후 전군으로 확대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군은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K-9 부품에 대해서는 2차례에 걸쳐 전문검사관의 기술검사와 정비를 받도록 했고, 장약 보관·운용 방법, 뇌관 사용 지침, 사격 안전통제체계 등을 보완했다.
사고 이후 중단된 K-9 자주포 사격에 대해선 “사격 전 장비별 성능 발휘 정밀검사를 거쳐 포병 안전사격 시범 교육 이후 단계적으로 사격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군은 사격 재개에 앞서 내년 1월부터 K-9을 전수조사할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이번 사고 조사 결과는 군 검찰에 송부할 것”이라며 “군 검찰의 판단에 따라서는 수사가 시작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사위의 이번 발표에 대해 한화지상방산 등 K-9 제작에 참가한 방산업체 측은 “K-9에 관해 전문적인 식견과 기술을 보유한 제작업체와 개발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조사위에 공식 참여하지 못했다”며 추가검증을 요구했다.
그러나 조사위는 “4개월 조사 기간 중 3개월을 업체가 함께 했다”며 “조사에는 업체가 참여하도록 하고 사고 원인 식별에서는 배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K-9은 대표적인 국산 무기로, 1999년 이후 900여 문이 백령도·연평도 등 서북 도서와 휴전선 인근 최전방 지역에 배치됐다. 당초 최대 사거리 40㎞가 넘는 세계 정상급 자주포로 주목을 받았다. 우리 군은 '명품 무기'로 선전했다.
하지만 2009년 이후 잇따라 불량이 발생하고 납품 과정에서의 비리가 적발됐다. 자주포 엔진의 힘을 바퀴에 전달하는 이음매에 문제가 있었고, 엔진에 불량 부동액을 써 엔진 실린더 외벽에 구멍이 생긴 적도 있었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때는 6문 중 3문이 작동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