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에 영구치에 손상이 생겨서 치아를 뽑으면 성장하는 동안 임플란트 치료가 불가능하다. 근관(신경)치료는 치아를 다쳤거나 충치가 심하게 진행된 경우, 염증이 진행된 치아 내부의 치수(신경)를 제거해 통증을 줄이고 치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치료법이다. 전신 건강이 좋지 않은 환자가 발치 역시 불가능한 경우, 근관치료는 치아를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사용된다. 이처럼 환자의 치아 건강에 있어서 근관치료는 치아 보존 수단으로서 의미있게 사용돼왔다.
그런데 '신경치료 후 치아의 근관 안에 존재하는 세균이 혈액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서 다른 장기에 질병을 일으킨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같은 주장은 무려 100년 전 유행했던 학설이다. 이 학설은 당시에도 여러 학자들에 의해 반박됐고, 1950년대 마침내 미국 치과의사협회지(JADA)에서 믿을 만한 근거가 없다고 공식적으로 확정했다. 그 이후 현재까지 치아의 근관치료가 전신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거나 치아 신경 내의 세균이 혈액을 타고 다른 곳에 질병을 일으킨다는 이론에 대해 그 누구도 증명하지 못했다.
근관치료는 특별한 치과 치료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대부분 치과의사가 근관치료를 하고 있으며 지난 100여 년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근관치료를 받아왔다. 심평원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연간 300만개 이상의 치아가 신경치료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신경치료가 전신질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구강이나 위장관, 비뇨기관 등은 외부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어떤 시술을 받으면 세균이 들어갈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문제가 없지만 심장판막에 이상이 있는 소수의 환자들에게는 치과에서 받는 시술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세균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치료 전 항생제를 투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치아 신경치료 때에는 예방적 항생제를 투여할 필요가 없다. 미국심장학회(AHA)가 2007년 제시한 가이드라인 권고에 따르면 치과 치료 전 감염성 심내막염 예방을 위해 항생제 처방이 필요한 경우는 심장판막 수술을 받은 환자 등 극히 소수의 고위험군 환자로 한정하고 있다. 또한 적절한 구강 위생 관리가 구강 내의 타액에 존재하는 세균이 혈액 내로 침투하는 것을 예방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치과근관치료학회는 '신경치료가 전신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황정빈 원장의 칼럼(2017년 11월 28일자 메디컬리포트)에 대해 심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적으로 근거 없는 주장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파된다면, 일부 환자들은 손상된 치아일지라도 근관치료를 받아 오랫동안 잘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이는 국민의 구강보건을 크게 저해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에 일부 환자들은 근관치료 비용이 임플란트 치료 비용만큼 비싸다는 이유로 이를 망설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미국 근관치료학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환자들이 근관치료를 포기하고 살릴 수 있는 치아를 무작정 뽑는 것을 줄이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근관치료가 매우 안전한 치료라는 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근관치료 비용이 임플란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환자들은 자연 치아를 뽑지 않고 치료해 계속 사용하기를 희망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치료가 가능하다면, 자연 치아를 건강하게 오래 사용하는 것이 환자의 건강에도 유익하다. 그런데 근관치료를 받으면 암에 걸리고 중병에 걸린다는 식의 잘못된 정보를 믿고,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치아의 근관치료를 포기하는 사람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 우려된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의혹에 현혹돼 소중한 치아를 잃지 않기 바란다.
※'메디컬 발언대' 칼럼은 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