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의 '명신당필방'은 86년째 같은 자리에 있다. 문화재 수장가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이 운영하던 고서점 '한남서림'의 터다. 1932년 10평도 안 되는 작은 벼루 가게로 시작해 4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문방사우인 종이·붓·먹·벼루를 팔다가 전각(篆刻·인장을 나무나 돌에 새기는 예술)과 서예까지 영역을 넓혔다.

가게 문을 열면 붓 진열대부터 눈에 들어온다. 가늘고 부드러운 세필부터 빗자루처럼 억센 붓까지 세워서 전시해 놓았다. 다른 붓들은 신문지에 둘둘 말아 진열대 위에 쌓아 놓는다. 벌레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1950년대에 쓰던 방식 그대로다.

서울 인사동에서 4대째 붓·먹·벼루 등을 팔아온‘명신당필방’사장 김명씨가 붓 진열대 앞에서 웃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스페인 국왕 부부 등 국빈들이 이 필방을 찾았다.

김명(59) 사장은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게를 운영한다. 남편인 이시규씨는 서예 작가로 활동 중이다. 김씨는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가 쓰던 진열장이나 의자들을 대부분 그대로 놔뒀다. 지저분한 여자라 잘 안 치운다"며 웃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물건들은 그대로 인테리어가 된다. 요즘은 김씨의 딸도 가게에서 일을 도우며 가업을 배우고 있다.

전통을 지키는 것만이 장수의 비결이 아니다. 꾸준한 재료 연구가 밑바탕에 있다. 공장에서 물건을 받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재료를 찾는다. 어떻게 독창적인 재료로 색다른 느낌을 만들 수 있을지 호기심이 넘친다. 가게 안쪽에 붙어 있는 주방은 그의 작은 실험실이다. 먹의 재료인 아교를 만들기 위해 소 껍질이나 아구를 사와 끓여보기도 했다. 김씨는 "등나무나 야자수·대나무를 망치로 두드려 섬유질을 뽑아 붓을 만들기도 한다"며 "붓은 주로 추운 지방의 동물 털로 만드는데 기후 온난화로 인해 윤기 나는 털을 얻기가 점점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의 서예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명신당필방'은 외국 유명 인사들에게도 매력적이다. 1999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이곳을 들렀다. 남편 이시규씨가 처음에 한문으로 휘호를 써주자 여왕이 "중국 글씨냐"고 물었다. 그가 다시 한글로 '훈민정음'이라고 쓴 휘호를 선물하자 여왕은 "무척 보기 좋고 감동적"이라며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갑작스레 가게를 찾은 귀빈도 있었다. 김씨는 "저녁에 혼자 가게에 앉아있는데 웬 잘생긴 남자가 들어오더라. 알고 보니 영국 캐머런 총리였다"고 했다. 필방은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한글로 된 도장을 선물하기도 했다.

'필방'이라고 하면 어르신들만 찾을 것 같지만 정돈되지 않은 공간은 아이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한국 아이를 세 명이나 입양한 미국인 부부는 한국에 올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 김씨가 도장을 새길 동안 아이들은 앞에 앉아 종이에 낙서하며 시간을 보낸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일본인 소녀도 오랜 손님 중 하나다. 고(故) 박용하의 팬인 엄마가 드라마 촬영 장소였던 이곳을 들르면서 인연이 이어졌다. 김씨는 "아이가 가게를 무척 좋아해서 1~2년에 한 번씩 꾸준히 이곳을 찾아오더라"고 했다.

긴 세월을 함께 해온 동반자들이 하나둘씩 떠나가는 것이 요즘 고민이다. 매년 겨울마다 먹을 찍어오던 사장님이 90세가 넘어 올해부터 일을 그만뒀다. 30년 넘게 호흡을 맞춰 온 파트너를 대신할 만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서만 재료를 찾기 힘들다 보니 요즘엔 중국을 오가기도 한다.

인사동길 한가운데 자리 잡은 가게는 동네 사랑방이 됐다. 김씨는 "누구나 들어와서 앉았다 갈 수 있게 의자 5~6개를 놔뒀다"고 했다.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커피 한잔하실래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김씨는 "손님과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받는 느낌을 담아 세상에 하나뿐인 도장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