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불교 경전은 첫 구절이 '여시아문(如是我聞)' 즉 '나는 이렇게 들었다'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선(禪)의 세계에서, 듣는 것은 소용 없습니다. 실제로 체험해야죠. 그런 점에선 '여시아오(如是我悟)'의 세계입니다. 그 세계로 들어가는 문(門)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김사업(56·사진)씨는 최근 불교의 연기(緣起)·공(空)·유식(唯識)사상을 선(禪)의 관점에서 풀어쓴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수업'(불광출판사)을 펴냈다. 사실 불교 이론은 이해가 쉽지 않다. 김 법사는 이런 어려운 길의 가이드로는 적격이다. 서울대 영문학과를 나와 대기업에 근무하다 뒤늦게 동국대에서 불교학을 전공해 석·박사 학위를 받고 일본 교토대에도 유학한 그는 2003년 선배 도반(道伴)인 장휘옥(66)씨와 함께 경남 통영 앞바다 작은 섬 오곡도(烏谷島)에 들어가 명상수련원을 열었다. 이에 앞서 두 사람은 미얀마와 일본 등의 참선 수행 고수(高手)들을 찾아다녔다. "깨달음에 대한 불교 교리를 강의하면서 실제 수행 경험이 없었다"는 자성 때문이었다. 그 결과는 2005년 '길을 걷는 자, 너는 누구냐'를 시작으로 '무문관 참구' 등의 책으로 엮어 소개했다.

이번 책은 경전 공부로 시작해 선(禪)의 세계로 들어간 김씨가 자신의 공부 과정을 독자들에게 풀어놓는 형식이다. 책에는 '포클레인 기사'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이따금 오곡도에 와서 이런저런 공사를 해주는 이다. 포클레인 기사들은 특유의 자존심이 있다. 포클레인으로 하는 일 외의 허드렛일은 꺼린다. 그런데 이 기사는 여러 차례 오곡도 공사를 맡고, 또 1주일 과정의 집중 수련에도 참여하면서 조금씩 바뀌어갔다.

얼마 전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온 포클레인 기사는 "너무 바빠서 한 달에 겨우 하루 이틀 쉰다"고 했다. "불경기에 어떻게 그렇게 일이 많으냐"는 김씨 질문에 대한 포클레인 기사의 답은 "공사 맡긴 주인의 마음으로 일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는 것이었다. 중국 임제 선사가 '언제 어디서든 주인이 되라' 했던 '수처작주(隨處作主)' 가르침을 생활에서 실천하는 경우다. 김씨는 "선(禪)은 연기·공·유식을 지식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그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이라며 "하루를 100%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 바로 선을 실천하는 삶"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 책을 출간한 후 19일 열흘 예정으로 일본 임제종 대본산 향악사 다이호 방장(方丈) 스님과 함께 집중수행을 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2003년 이후 매년 빠뜨리지 않는 수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