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술집 '베를린핑퐁'. 송년 모임을 하러 온 7명의 친구들이 한쪽에 놓인 탁구대 주위에 섰다. 이들이 즐긴 것은 탁구가 아닌 '비어퐁' 게임. 한 남성이 손으로 탁구공을 집어 탁구대 위로 던지자 시끌벅적했던 실내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탁구대 위를 '탁' '탁' 튀기며 네트를 넘은 탁구공은 반대편에 놓여 있던 맥주잔 안으로 골인했다. 구경하던 이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맥주잔 쪽에 서 있던 계은영(33)씨가 잔을 들어 공을 빼낸 뒤 맥주를 들이켰다. 계씨는 "게임을 즐기다 보면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도 분위기에 취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며 "2차는 술을 마시며 볼링을 칠 수 있는 곳으로 예약했다"고 했다.

술과 스포츠, 게임을 함께 즐기는 형태의 송년회가 인기다. 직장인들이 탁구대 위에 놓인 맥주잔에 탁구공을 집어넣는‘비어퐁’게임을 즐기고 있다.

스포츠·게임을 즐기며 술을 마시는 '비어테인먼트(Beertainment)'가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다. 맥주를 뜻하는 '비어(Beer)'와 놀이라는 뜻의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합친 말이다. 알코올 도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맥주를 주로 마셔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흥은 돋우되 과하게 취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는 송년회의 대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4~5년 전쯤 등장한 볼링펍(볼링 치는 술집)을 필두로 최근에는 핑퐁펍(탁구), 다트펍, 당구펍 등 음주와 놀이를 결합한 매장이 전국에 생기고 있다.

술만 먹는 송년회에 지친 직장인들의 반응은 뜨겁다. 실제로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올해 직장인 288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 절반 이상(56.3%)이 송년회 참석이 부담된다고 답했고, 가장 큰 이유로 과음하는 분위기(27.7%)를 꼽았다. 광고 회사에 다니는 강은정(26)씨는 "게임을 즐기며 회식하면 팀원 모두가 즐길 수 있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상대방에게 억지로 술을 권하며 과음할 필요가 없어 좋다"고 했다.

20~30대 직장인들이 주로 찾지만 40~50대 팀장·부장들도 후배들과 함께 즐겨 찾는다. 후배들은 상사의 썰렁한 농담에 일일이 맞장구칠 필요가 없고, 상사들은 대화를 주도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볼링펍 '더프레임' 관계자는 "송년회 시즌이면 하루 10팀 이상이 부서 회식을 즐기러 와 예약이 꽉 찬다"며 "주로 오후 8~9시쯤 2차로 와서 맥주와 볼링을 즐기고 회식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스크린 낚시를 즐기며 술을 마시는‘낚시펍’은 혼술족과 연인들에게 인기다.

'혼술족'과 연인들에게도 비어테인먼트의 인기가 뜨겁다. 이들은 주로 스크린 낚시·골프·사격이나 보드게임, 추억의 전자오락을 즐기는 술집을 선호한다. 서울 송파에 있는 '피싱조이'는 스크린 낚시를 즐기며 맥주를 마시는 '낚시펍'이다. 연인들이나 퇴근길 혼자서 맥주 한잔하려는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다. 각종 전자 오락기를 설치해 놓은 서울 마포의 '연남 오락실'은 아예 '혼술하기 좋은 맥줏집'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과음을 강권하는 리더는 부하 직원들에게 존경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퍼지며 비어테인먼트가 주목받는다"며 "웬만한 대화는 소셜 미디어로 이미 나누니 술자리에선 대화 이외의 즐길 거리를 찾는 것도 유행의 배경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