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선언한 이후 세계 기후변화 대응을 이끌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원전 비중을 축소하겠다던 대선 공약을 뒤집고 원전에 대한 신중한 접근 방식을 택했다고 로이터통신이 1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공영방송인 프랑스2 TV 인터뷰에서 "프랑스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석탄 화력발전소를 폐쇄하는 것"이라면서 "탈(脫)원전 선언 이후 석탄 화력발전소 가동이 늘고 있는 독일의 예를 따르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 유럽, 국제사회의 최우선 해결 과제는 이산화탄소 배출과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이라며 "원전은 탄소 배출을 가장 적게 하면서 전력을 생산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해서는 "전력 생산이 불안정해 원전을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의 전력 생산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원전을 줄여 나가면 독일처럼 이산화탄소를 대거 배출하는 석탄 화력발전에 대한 의존도만 높아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마크롱 정부는 '원전 단계적 축소안'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는 지난 정권인 사회당 정부로부터 계승한 정책으로, 가동 중인 58기 원자로 중 17기를 폐쇄해 현재 프랑스 전체 전력 생산의 71%에 이르는 원전 비중을 2025년까지 50%로 낮추겠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원자력안전청(ASN)의 판단을 기다릴 것"이라며 "그 결과에 따라 일부 원전을 폐쇄할지 현대화할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현재 프랑스 최고령 원자력 발전소인 페센하임 원전만 2018년 말 폐쇄가 확정된 상태다. ASN은 2020∼2021년쯤 가동 중인 프랑스 원전 57기의 수명 연장 등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릴 방침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당분간 원전 축소를 시행하지 않고 기다렸다가 ASN의 결론이 나오면 축소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을 하겠다는 뜻이다. 앞서 원전 반대론자인 니콜라 윌로 환경장관도 지난달 7일 전력 수급 차질과 환경 악화 우려 등을 이유로 원전 축소 계획을 늦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간 르피가로는 "원전 축소 정책이 마크롱 대통령이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 중인 기후변화 대응과 상충하면서 프랑스 정부가 신중론으로 방향을 튼 것"이라고 했다.
[신재생에너지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계기로 '탈(脫)원전'을 선언했다. 그해 원자로 17기 중 노후 원자로 8기를 즉각 폐기했고, 남은 9기는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 원자력발전 중단으로 발생한 전기 부족분은 풍력·태양열 등의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11~2016년까지 독일의 원자력발전 비중은 17.6%에서 2016년 13.1%로 크게 줄었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같은 기간 20.1%에서 29.5%로 늘어났다.
문제는 석탄 발전 의존도였다. 2011년 독일 전력 생산 중 42.9%를 차지했던 석탄 비중은 2013년 45.2%까지 늘었다가 2016년 40.1%로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다.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량은 2011년 약 230TWh(테라와트시)에서 2016년 234TWh로 오히려 증가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2011년 8억 1300만t에서 2015년 7억9100만t으로 줄었지만, 2016년 8억200만t으로 다시 반등했다. 로이터는 "독일은 전 세계에서 석탄 생산 규모 7위를 차지하는 나라"라며 "정치권이 관련 업계의 고용 문제와 노조의 반발, 안정적인 전력 공급 문제를 우려해 석탄 발전 비중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탄광·에너지 노조 총회에 참석해 "기후변화협약 이행과 현행 에너지 산업의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며 '탈석탄'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독일 본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2021년까지 석탄 화력발전을 퇴출시키겠다"고 선언했지만, 메르켈 총리는 석탄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못했다. '2020년까지 1990년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0%를 감축하겠다'는 기존 목표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