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력 다 합하면 200년 넘게 눈을 치웠네요. 고향에서 열리는 올림픽인데 기꺼이 눈 치우는 데 나서야죠."

강원도 강릉시에서 36년 동안 제설(除雪) 담당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이강만(60)씨는 "올겨울은 눈 치우는 데 '올인'하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올해 초 퇴직한 뒤 지금은 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다.

이씨를 비롯한 '강릉 퇴직 공무원 8인방'이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2월 9~25일) 생업을 접고 제설 봉사에 나선다. 최인규(63)·심재창(62)·김찬우(61)·심재벽(61)·이양빈(60)·김우석(59)·정형근(59)씨가 주인공이다. 모두 로더(토사 등을 운반하는 장비), 덤프트럭 등 중장비 면허를 보유한 기능직 공무원 출신으로, 이들의 눈 치우기 경력은 평균 28.5년, 합치면 228년에 달한다. 한마디로 '제설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다.

내년 2월 평창올림픽 기간 제설(除雪) 봉사에 나서는 강릉 퇴직 공무원들이 강릉시 ‘제설 기지’에 있는 15t 제설차 위에서 “눈아 올 테면 와봐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강만·이양빈·김우석·김찬우·심재벽·정형근씨.

강릉은 예측할 수 없는 '눈 폭탄'이 떨어지는 도시다. 2014년 2월엔 9일 동안 성인 키보다 높은 193㎝의 눈이 쌓이기도 했다. 강릉에서 빙상경기 등이 열리는 동계올림픽 기간에 폭설이 내려 경기장·선수촌 근처 주요 도로가 막히면 대회 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강릉시가 올 3월부터 제설 대책을 마련하고 준비에 들어가자, 퇴직 공무원이 "우리도 일손을 보태겠다"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재능 기부에 나선 이유다.

강릉시와 제설의 달인은 요즘 '예행연습'에 한창이다. 경기가 열리는 올림픽파크·종합운동장 일대를 18개 노선으로 나누고, 제설차가 지나갈 길을 미리 확인하고 있다. 제설 경력 28년의 김우석씨는 "도로가 눈으로 덮이면 아무것도 안 보이기 때문에 위험 지형을 미리 파악해 두는 것이 필수적"이라면서 "맨홀 뚜껑 등을 잘못 건드리면 안전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올림픽 기간에는 강릉시 공무원과 퇴직 공무원 등 총 250여명, 제설 장비 110대가 제설 작업에 투입된다. 제설 인원은 2교대로 24시간 대기하면서 폭설에 대비한다.

강릉시 공무원들이 '제설의 달인'으로 불리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다. 1985년부터 강릉시 공무원으로 일한 이양빈씨는 "80년대 제설차가 어디 있었겠느냐. 삽 하나만 들고 눈과 전쟁을 벌였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에서야 로더 같은 제설차가 수입돼 투입됐다. 심재벽씨는 "당시 중장비를 몰아 눈을 치운다는 게 신세계였다. 속도는 어느 정도 내서 눈을 밀어야 할지, 밀어낸 눈은 어디에 쌓아두고 처리할지 제설 매뉴얼이 하나씩 만들어졌다"고 했다.

눈을 치우다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김찬우씨는 2011년 제설 작업 도중 바닥에서 튀어오른 맨홀 뚜껑에 가슴을 맞으면서 두 팔에 마비가 와 재활 치료를 받았다. 김우석씨는 눈길에 미끄러져 골반뼈에 금이 갔다. 장찬영 강릉시 도로관리담당은 "우리끼리는 눈에 '홀린다'고 한다"면서 "항상 조심하지만 몇 날 며칠을 흰 눈만 보다 보면 눈에 홀려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강릉시는 '제설 우수 도시'로 꼽히는 등 전국 지자체 가운데 제설 작업 모범 도시라는 평을 받는다. 심봉섭 강릉시 도로과장은 "제설 담당 공무원들이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사흘 밤을 새워가며 열정적으로 눈을 치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심 과장은 "올겨울은 제설의 달인 8명까지 나서주니 걱정이 없다"면서 "강릉시와 제설의 달인이 '하나 된 열정'을 발휘해 올림픽 기간 폭설이 내리더라도 대회 운영에 지장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