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김○○ 부이사관 모친이 ○월 ○일 돌아가셨습니다." "○○과 이○○ 사무관이 ○월 ○일 결혼합니다."
A로펌 공정거래팀에는 공정위 소속 공무원들의 경조사가 거의 매일 공지된다. 공정위 이사관(2급), 부이사관(3급)에서 사무관(5급), 조사관(6급)까지 직급도 가리지 않는다. 이를 받는 변호사들은 고민에 빠진다. 한 변호사는 "경조사 당사자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언제 어떤 사건으로 만날지 모르니 무시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직접 참석 못하면 부조금이라도 보내기도 한다. 청탁금지법 시행 전에는 로펌 명의로 부조금을 보냈지만, 지금은 전문위원이나 변호사 개인 명의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처럼 로펌에서 공정위를 챙기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기업에 수천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하는 데다 공정위 결정은 법원 1심과 효력이 같다. 그래서 기업을 대리하는 로펌들은 공정위와 최대한 접촉면을 넓히려 한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2013~2017 공정위 출입·방문 기록'에 따르면 이 기간 중 김앤장 법률사무소 직원들은 3168번 공정위를 방문했다. 법무법인 세종·광장·태평양·율촌·화우 방문 횟수도 각각 610~856회에 달한다. 물론 이 가운데에는 공식 법률 업무를 위한 방문도 포함돼 있다.
이런 현상은 공정위 개혁 기조에 반한다. 김상조 위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개혁 과제 1호로 '퇴직자의 부적절한 연락 금지'를 꼽았다. 직원과 퇴직자 간 골프, 식사 등 사적인 만남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신영선 부위원장은 "대면 접촉뿐 아니라 전화·문자 등도 관리 대상"이라고 했다. 공무원행동강령도 직무 관련자에게 경조사를 통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관행은 이어지고 있다. 공정위의 우월적 위치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경조사 공지 내용 앞에 '기쁜 소식' 등의 말머리와 함께 '꼭 오셔서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등의 문구도 포함돼 있어, 공정위 내부통신망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수준이다. 심지어 경조사 당사자의 개인 연락처도 포함돼 있다. 물론 당사자가 올렸을 가능성은 적다. 어느 경조사 당사자인 공정위 직원은 "내가 올린 것도 아니고, 동료들이 내부통신망에 경조사 일정을 올려준 것으로 안다. 도대체 어떻게 로펌에까지 도냐"며 펄쩍 뛰었다. 다른 공정위 직원이 SNS 등으로 로펌 전문위원 등에게 알려줬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목된 전문위원은 "난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다.
공정위는 "큰 문제는 없다"는 반응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당사자가 직접 경조사를 통지한 게 아니어서 공무원윤리강령 문제는 아니다"고 했다. 그는 또 "부조 금액이 10만원 이하라면 청탁금지법 위반도 아니다"고했다. 경조사는 인지상정인 만큼, 청탁금지법이 정한 부조 금액 상한만 지키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규제 기관 직원의 경조사 소식이 이해관계가 있는 상대에게 수시로 전달되는 것은 법적으로만 볼 문제가 아니다. 최근 공정위의 대기업 제재가 늘어나면서 각 로펌은 공정위 퇴직자를 고문이나 전문위원 등으로 앞다퉈 영입하고 있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위가 갖는 영향력을 감안할 때 이 문제는 합법·불법의 영역이 아닌 공정성의 영역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