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4일 한 노숙인이 서울 지하철 을지로4가역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틀 뒤 취임한 지 열흘 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노숙인이 안치된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으로 달려갔다. 박 시장은 "그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분석해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인 2012년 서울시 노숙인 예산이 전년 대비 50억원(9.48%) 늘어난 413억8400만원으로 뛰었다.

급증한 시의 노숙인 예산을 두고 이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시 추계 노숙인은 4366명이었다. 심재철 의원은 "서울시가 노숙인 1인당 연간 1000만원을 쓰고 있다"며 "노숙인 사업 성과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해 시는 노숙인 300명에게 중고 스마트폰을 지급해 효용성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이후에도 시 노숙인 예산은 해마다 10~14% 늘어나고 있다. 올해 예산은 477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내년에는 500억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관련 전문가들은 "시가 해마다 수백억원을 쓰고도 노숙인을 크게 줄이지 못하는 거대한 블랙홀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전국 지자체 노숙인 관련 예산의 절반 이상을 서울시가 차지한다"고 했다. 시가 노숙인 한 명당 들이는 연간 예산은 2012년 947만원에서 해마다 늘어 올해 1473만원에 달한다. 올해 최저임금인 월급 135만원에 맞먹는다.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2년 전체 4586명이었던 노숙인은 매년 약 5%씩 줄어 올해 3241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투입 비용에 비해 실적이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시가 집계하는 노숙자는 주로 거리에서 지내는 '거리 노숙자'와 노숙자 지원 시설을 이용하는 '시설 노숙자'로 나뉜다. 예산 중 가장 많은 액수가 시설 운영에 들어간다. 전체 예산의 절반인 241억원이나 된다. 시 관계자는 "현재 시설 공실률은 20~30%로 시 노숙인을 전부 수용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현장에서 일하는 노숙 상담가들은 "노숙인이 찾지 않는 시설을 운영하느라 세금이 낭비된다"고 비판한다.

시에서 수백억원을 들이고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우선순위 설정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노숙인 지원 시설은 금주(禁酒)가 원칙이다. 상당수 노숙자는 알코올중독자다. 시설이 편해도 입소를 꺼린다. 올해로 4년째 노숙인 상담 활동을 하는 손은식 목사는 "노숙인 대부분이 알코올중독을 앓고 있는데 당장 술을 끊으라고 하면 누가 시설에 들어가겠느냐"고 했다.

전문가들은 시설 운영이 아니라 정신 상담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알코올중독 치료를 우선으로 꼽는다. 그러나 정신보건법상 강제 입원은 불가능하다. 노숙인 지원 활동을 하는 브릿지종합지원센터 관계자는 "거리 노숙인 대부분이 알코올중독이나 정신 건강 질환을 갖고 있으나 치료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응급 입원할 정도로 악화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현실"이라며 "시에서 정신 건강관리 인력을 더 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노숙인 시설 44곳 중 1군데가 정신 건강 질환자 특화 기관이다. 시 관계자는 "노숙인 정신 상담을 위해 2012년 전문 정신보건팀을 꾸렸다"며 "전문의 1명과 정신상담전문간호사·사회복지사 8명으로 구성된 팀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숙자 일자리 지원 사업의 효율성 제고도 거론된다. 시는 일자리 지원에 올해 80억원을 들인다. 예산 중 시설 운영 다음으로 비중이 높다. 노숙인들은 시가 마련한 임대주택이나 시설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시설 주변 청소나 공원 청소 등의 공공 일자리를 받는다. 이들은 한 달에 50만원을 받는다. 손 목사는 "단순 노동으로 돈을 번 알코올중독 노숙인들이 아무도 없는 고시원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 죽음을 맞는 것을 여러 번 봤다"며 며 "근본적 처방 없이는 노숙인을 줄이지도 못하면서 세금만 계속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원책을 내놓을 때 세밀한 파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서울시는 거리 노숙인에게 1인당 1개 원칙으로 침낭을 나눠줬다. 노숙인은 320명이었는데 침낭은 5배인 1566개가 배부됐다. 일부 노숙인이 받은 침낭을 남대문시장이나 동묘 등에서 되팔아 술을 사 마시고 또 받아가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적이 잇따르자 서울시는 올해부터 침낭에 '서울시 구호품'이라고 새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