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만에 국내 개봉한 1991년 대만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감독 에드워드 양)을 보는 건 관람보다는 차라리 체험에 가깝다. 1961년 대만에서 처음으로 일어났던 미성년자 살인 사건에 바탕한 이 작품의 상영 시간은 중간 휴식(10분)을 포함해 무려 4시간 17분. 속 시원하게 앞으로 나가지 않는 이야기 흐름과 고정된 채 움직일 줄 모르는 정적(靜的)인 카메라까지, 웬만한 영화광이 아니라면 전반부는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테스트와 같다. 영화광들이 숨 막힐 듯한 전율에 감격할 때, 옆자리 관객은 숨 넘어갈 듯 장탄식을 내뱉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년 갱단의 피비린내 나는 알력으로 조직 두목이 숨지는 전반부 마지막 장면부터 이중의 소용돌이가 거세게 일어난다. 평생 공무원으로 고지식하게 살았던 아버지는 공안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혹독한 취조를 받고, 야간 중학교에 다니던 소년 '샤오쓰'(장첸)는 교사에게 대들었다가 퇴학당한다. 어른과 아이들의 세상은 교차하는 법 없이 시종 평행선을 달린다. 두 세상은 정치·교육적으로 우리와 공통점이 적지 않았던 대만의 현대사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영화 막판까지 탈출구를 찾지 못하던 청춘은 애욕에 눈멀어 엉뚱한 곳에 분노를 터뜨린다. 소년이 느꼈음 직한 억압과 분노 사이에 엄밀한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 여백을 관객의 상상력에 맡기는 것 또한 이 영화의 매력. 4시간의 고행(苦行)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엘비스 프레슬리의 미성이 귓가에 맴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