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 단편소설 '다정한 핀잔'은 누군가가 건넨 호빵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배가 부른데도 거절하기가 뭐해서.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손바닥을 동그랗게 말아 호빵을 감싸보았다. 따뜻했다." 따뜻하다. 나는 일단 '찐빵'이 아니라 '호빵'이어서 더 몸이 녹는다. 표준어가 찐빵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호빵이라고 해야 진짜 호빵 같다. 호호 불어 먹는 호빵. "나는 들고 있던 호빵을 반으로 잘랐다. 팥 냄새가 코에서 느껴지지 않고 배꼽 어딘가에서 느껴졌다." 절묘하지 않나? 윤성희는 이런 소설을 쓴다. 그래서 읽다 보면 내 배꼽 언저리에서도 팥 냄새가 느껴지는 것이다.
소설을 쓰다 보면 이렇게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다. 소설의 분위기를 해하지 않으면서 소설과 음식 모두, 그러니까 쌍방을 상승시키는 일은 만만치가 않다. 그런데 이 일을 윤성희라는 작가는 하고 있고, 이런 걸 읽다 보면 기가 죽어 더 쓰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기가 죽은 일이 있었으니, 작가의 자격증 때문이었다. 윤성희는 소맥 조제 자격증 같은 걸 갖고 있었다. (자격증을 본 것도 같은데 술김이라 정확하지 않다.) '비법이 뭡니까?'라고 묻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소주는 맥주를 거둘 뿐입니다. 소주는 맥주를 능가하면 안 됩니다!' 거의 만화 '봉신연의'에 나오는 도사의 포스였다. 나는 그 말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술김에도 의지를 발휘해 휴대폰에 메모, 그 결과 지금 이렇게 정확히 옮기고 있다. 어쨌거나 조제 전문가가 말아주는 술을 마시고 나는 일생일대로 만취, 집에 와놓고도 일어날 기운이 없어 아파트 화단에 한 시간 넘게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술을 많이 마시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얼어 죽을 수 있겠구나. 한겨울이었다.
이 소설은 수술실 밖에서, 수술이 끝날 때까지 벌어지는 이야기다. 수술받는 사람은 미희 언니, 미희 언니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소설의 화자 '나'와 미희 언니의 동생 미애씨, 미애씨의 아들 형욱이다.
중학생인 형욱이가 저녁을 먹고 들어올 때 호빵을 사와 '나'에게 건넸던 것. 시간이 흘러 내 친구의(동생의) 아들이나 딸이 중학생이 되었다고 치자. 그 애들이 내게 호빵을 건네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난 이런 거에 맥을 못 추는 사람이라서, 아무래도 호빵을 먹지 못할 것 같다. 그러니 호빵만은, 한겨울의 호빵만은, 김이 폴폴 나다 못해 눈앞을 흐리게 하는 호빵만은 제발 내게 주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