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백신 괴담(怪談)에 맞서 싸운 의사 출신 저널리스트가 국제과학상을 받았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지난 달 30일 "무라나카 리코(村中璃子·사진) 교토대 의대 겸임교수가 인간유두종 바이러스(HPV) 예방백신에 대한 일본 사회의 공포감이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 공으로 '존 매덕스 상(John Maddox Prize)'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상은 1966~1973년 네이처 편집장을 지낸 고(故) 존 매덕스 경의 이름을 따 제정됐다. 위협 받는 상황에서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과학을 옹호한 사람에게 2012년부터 수여하고 있다.

매년 전 세계 25만여명이 HPV가 유발한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한다. 일본 정부는 2013년 HPV 백신을 국가 필수 예방접종에 포함시켰으며, 한때 10대 초반 여성 접종률이 70%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TV 방송에서 한 소녀가 백신을 맞고 발작 증세를 보였다는 주장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보도하면서 접종률이 1% 아래로 급락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부터 자궁경부암 백신이 국가 필수 예방접종에 들어갔지만, 일본 영향을 받아 접종률이 50%가 되지 않는다.

무라나카 교수는 2015년부터 HPV 백신에 대한 공포에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내용의 글을 잡지 등에 기고했다. 지난해에는 백신의 위험성을 뒷받침했다는 동물실험에 의문을 제기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신슈대학에 동물실험을 의뢰했는데, HPV 백신이 쥐의 뇌 손상을 유발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나중에 신슈대 조사위원회는 연구진이 쥐 한 마리에서 나타난 증세를 성급하게 일반화시켰다고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지난 6월 자궁경부암 예방백신이 발작 등을 유발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신슈대 연구진은 무라나카 교수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백신 반대 단체들도 "백신 회사의 돈을 받았다, WHO의 스파이다"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잡지사와 출판사는 분위기에 위축돼 기고와 출판 계약을 취소했다.

무라나카 교수는 인터넷으로 자리를 옮겨 외로운 싸움을 계속 했다. 그는 수상 후 인터뷰에서 "일본 언론은 백신 반대 단체와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를 원했다"며 "수상 소식이 해외 언론에 보도되면 일본 언론도 이 문제를 다시 볼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무라나카 교수는 일본 히토쓰바시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홋카이도대학 의대를 나와 WHO 전염병 대응팀에서 일했다. 2014년 에볼라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의학 저널리스트로 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