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열은 솔직 담백했다. 29일 개봉하는 스릴러 '기억의 밤'에서 시종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는 인물인 주인공 '유석'이었다는 것을 깜빡 잊을 만했다.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무열은 물어보는 모든 것에 당당하게 대답했다.
스릴러 영화와 달리 김무열은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평소 영화도 잘 보지 않고, 소설도 안 읽는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스릴러 영화를 처음으로 작심하고 여러 편 봤을 뿐이다"고 말했다.
'기억의 밤' 시나리오가 그가 정독한 몇 안 되는 스릴러 책이었다.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평가를 듣는 그의 '얼굴'이 주는 묘한 분위기와 편견과 전혀 다른 부분이다. 김무열이 '기억의 밤' 출연을 선뜻 결정한 이유는 역시 시나리오 때문이었다.
"읽는 내내 왜 장항준 감독이 대중에게 인정받는 스토리텔러 연출가인지 알 수 있었다. 장르적 재미도 있었고 몰입도도 상당했다. 마치 톱니바퀴가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쾌감까지 느껴졌다."
"배우로서 유석이라는 인물이 가진 감정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도 크게 작용했다. 특히. 영화 마지막에 유석의 진짜 모습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선택하기에 충분했다."
'장항준'이라는 존재는 그가 이 작품을 선택하는 계기였지만, 어느 측면에서는 불안 요소이기도 했다. 이 대목을 말하는 그는 솔직했다. 홍보를 위해 감독에 대한 '무한 신뢰'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감독의 9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다. '너무 오래 쉰 것 아닌가' '감 떨어지지는 않았을까' '90년대식 연출을 하는 것 아닌지까' 등 걱정도 있었다.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게다가 감독님이 그동안 연출하신 작품은 유쾌한 코미디나 조금 어두워도 블랙코미디 정도였다.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결의 작품을 하겠다는 것이라 낯설기도 했다."
배우로서 시나리오가 좋아도 감독이 불안하면 선택하기 쉽지 않지만 이번 결정은 장 감독의 '열린 마음' 때문이었다.
김무열은 "장 감독은 첫 미팅에서. 사실 내가 오래 쉬어서 감이 많이 떨어진 것 같고, 스릴러는 드라마(SBS '싸인')를 한 번 해봤지만, 처음 시도하는 장르다. 그래서 주변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진행하고 있다. 배우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실 작품을 오래 쉬고 온 사람은 어떤 부분에서는 한풀 꺾였을 수 있지만,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더욱 단단해져 아집을 가질 수 있다는 불안함도 있었다. 그런데 감독이 그렇게 말씀하니 '열려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실제 촬영을 하면서 감독은 배우, 스태프와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다른 사람의 의견이 옳다고 판단하면 그 부분을 과감히 수정했다. 그러면서도 본인이 지키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고 밀어붙였다"
김무열이 이 작품에 출연하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강하늘이 동생 '진석'으로 나온다는 것도 작용했다.
"(강)하늘과는 하늘이가 연기를 처음 시작하던 9년 전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처음 만나 공연했다. 몇 년 뒤 뮤지컬 '쓰릴미'로 다시 만났는데 팀은 달랐지만, 서로 연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인연을 맺고 친분을 이어온 동생인 데다 연기도 하늘이가 정말 잘하니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우려하는 것이 있기는 했다."
강하늘을 아끼는 마음때문이었다.
"하늘이가 신인 시절부터 선배인 나와 공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 연기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하늘이를 최대한 배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늘이도 내가 까마득한 후배인 자기와 함께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해 연기에 지장이 있을까 봐 나를 최대한 배려해야겠다고 생각했다더라."
김무열은 강하늘 칭찬을 이어갔다.
"하늘이가 정말 순수하다. 솔직히 처음 만났을 때는 신인이라 그럴 것이라고 여겼고, 몇 년 뒤에는 가식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거의 10년이 다 됐지만, 한결같다. 하늘이는 내게 동생이자 동료일 뿐만 아니라 배울 것이 많은 배우다."
이 영화는 지난해 '동주'(감독 이준익), 올해 '재심'(감독 ), '청년경찰'(감독 김주환) 등으로 충무로 20대 대세 배우로 떠오른 강하늘의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이다. 강하늘은 지난 9월11일 현역 입대했다. 결국 인터뷰, 무대 인사 등 모든 것을 김무열이 도맡아 강행군해야 한다.
영화는 지난 1997년 선진국 문턱에 섰던 대한민국을 삽시간에 침몰시킨 외환위기를 소재로 한다. 이 영화가 세상에 처음 공개된 언론시사회 날은 공교롭게도 22일은 20년 전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날이기도 했다.
엄청난 반전을 품고 있는 작품이다. 이는 어느 밤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19일 만에 돌아온 유석의 의심스러운 행동들로 인해 서서히 봉인이 해제된다. 그런 이유로 김무열에게 들은 흥미진진한 캐릭터 이야기를 모두 글로 옮길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장 감독의 수년에 걸쳐 공들여 집필하며 곳곳에 배치한 장치들을 김무열이 유석이 돼 제대로 표현해냈다는 점이다.
1982년생으로 외환위기 당시 중학생이었던 김무열은 어떤 기억이 있을까.
"당시 집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 은행 압류가 있었다는 얘기를 꺼냈다.
"어머니께서 분양 사기를 당해 힘들어진 상황에서 대출을 받은 것마저 잘못돼 그런 일이 일어났다.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갔고, 점점 작은 집으로 이사하게 됐다."
김무열은 "'왜 우리 집이 이렇게 됐을까'라고 생각해보니 그 원인이 IMF였다"며 "IMF, 가계부채 등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내 과거를 추적하게 됐다"고 말해 힘들었던 소년 시절을 고백했다.
그 시절 희생자로 그려진 유석에게 관객이 더욱 절절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안타까운 개인사가 투영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무열은 한 살 연하 배우 윤승아와 지난 2015년 4월 결혼했다. 이제 3년 차 부부다. "결혼한 지 시간이 좀 흘렀지만 우리는 연애할 때와 똑같다. 틈나면 데이트를 하고 여행도 떠난다. 작품이나 연기에 관해서는 서로 격려하지만, 평가하지는 않는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직 2세가 없다. "아직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는 쿨한 답이 돌아왔다. "얼마 전에 유기견 '막내'를 입양해 세 마리를 키운다. 두 마리도 힘들었는데 세 마리가 되니 정신이 없다"
영화를 끝낸 김무열은 OCN 오리지널 '나쁜녀석들2'에 주인공 '검사 노진평'으로 캐스팅됐다. 12월 9일 첫 방송한다.
드라마 얘기가 나오자 김무열은 영화 '기억의 밤' 못잖은 애정을 나타내며 시청을 권했다.
"얼마 전 편집본을 봤다. 카체이싱 장면인데 정말 대단했다. 웬만한 영화에 뒤지지 않는다. 아마 내년쯤 한동화 감독(나쁜녀석들2 연출자)은 미국 할리우드에 가 있지 않을까 싶다."
김무열은 할리우드의 거장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을 존경한다고 했다. 그가 혹시 캐스팅한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자 흥분감과 함께 자신감도 보였다.
"놀런 감독과 작품요? 와~꿈같은 얘기지만 만일 그럴 수 있다면 6개월 어학연수를 다녀와서라도 꼭 하겠다. 물론 그날이 올 때까지 난 이곳에서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지금도 내 연기를 보면 단점과 부족한 점만 보여 부끄럽다. 영화든, TV든, 무대든 가리지 않는다. 장르도 상관없다. 좋은 작품이 내게 올 수 있도록 앞으로도 항상 열심히 연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