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스타그램 속 '#일본여행_인증샷'에 자주 출현하는 '제품들'이 있다. #세븐일레븐_계란샌드위치 #로손_모찌롤 #일본_메론빵…. 일본 편의점에서 팔고 있는 온갖 종류의 '빵' 사진들이다.
아낌 없이 든 고급 재료, 셀 수 없이 다채로운 빵 사진을 보다 보면, 금세 입 안에 군침이 돈다. 소설 '편의점 인간'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호모 컨비니쿠스'('호모'+편의점을 뜻하는 '컨비니언스 스토어')라는 말까지 나오는 요즘. 일본 편의점 봉지빵에는 분명, '밀레니얼 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무언가'가 있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에선 ‘일본에서 반드시 사먹어야 할 편의점 빵 리스트’가 한글판으로 따로 정리돼 있고, 일본 TV프로그램이 방영한 ‘편의점 빵 랭킹’ 번역본이 돌아다니는 중이다. 제품이 ‘싸구려 빵’에 머물지 않고 ‘갓띵작’(신이 만든 명작을 뜻하는 인터넷 용어) 예우를 받는 경지까지 온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빵 모양이 예쁘다. 포장이 아기자기하다. 크림·샐러드·돈가스 같은 속재료가 자랑하고 싶을만큼 푸짐하게 들어 있다. ‘도장 깨기’ 하듯 인증하는 재미가 있다. 쓸 데 없이 어깨에 힘 주지 않는 친근함이 느껴진다. 값이 싸다. 결정적으로, 맛.있.다. ‘가성비’ 좋은 디저트류에서 ‘작은 사치’ ‘탕진잼’을 느낄 수 있다니, 요즘 2030세대를 관통하는 트렌드가 이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나섰다. 국내 편의점 빵 실태를 중간 점검해보기로 한 것. 이른바 '편의점 빵슐랭 가이드 2017 코리아'. 본지는 11월 초 편의점 업계 '빅3'인 CU·GS25·세븐일레븐에서 올해 10월까지 가장 많이 팔린 빵 리스트를 입수해, 데이터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빵 문건은 종이였기 때문에 별도의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깊은 아날로그적 고민 끝에 '참신하고 새로워 보이는' 빵을 추려내는 데 성공했다. 비록 순위에 없지만, 좀 '기묘'한 봉지빵과 MD가 적극 추천한 제품 몇 종류를 더 추가해 모두 '16개 제품'을 뽑았다. 아래는 그 명단이다.
맛 평가를 위해 파티시에, 식품기업 빵 개발자, 푸드 포토그래퍼, 빵 관련 책을 낸 작가를 섭외했다. 이들은 1~2시간 안에 16개의 빵을 모두 맛본 뒤, 혹독하게 평가해달라는 요구를 '진정성'있게 수락, 저마다의 관점에서 재미있고 냉정한 평가를 들려줬다. 편의점 빵슐랭 가이드 2017 코리아, 평가원들은 다음과 같다.
① '피에르 에르메 파리' 출신으로 서울의 프랑스 빵집 '메종엠오'를 운영 중인 오오츠카 테츠야(41) 오너 셰프와 이민선(35) 파티시에
② 올해 100만개 팔린 이마트 '치즈몽땅번'을 개발, 지금은 스타벅스 빵 개발을 맡고 있는 '양산(量産)빵' 전문가, 신세계푸드 김한민(37) 파트너
③ '치킨'과 '빵' 사진의 대가(大家), '배달의 민족'에서 음식 사진을 총괄하는 장진명(35) 우아한 형제들 포토팀장
④ 일본 제과학교 출신 빵순이, '오사카에 디저트 먹으러 갑니다'(2017·홍익출판사) 저자 황지선(40)씨
"저는 프랑스 정통 과자, 쿠키, 빵, 케익을 만들어요. 한국 편의점 빵은 아직까지 먹어보지 못했어요. 어릴 적 일본에선 편의점 샌드위치, 야끼소바 빵, 조리빵 같은 걸 즐겨 먹었는데, 이런 빵을 떠올리면 그리운 감(感)이 있어요. 재료도 그렇고…. 한국 역시 같은 레시피라도 조금 더 좋은 재료를 쓰고 반죽과 속 재료의 밸런스를 맞춘다면 더 좋은 빵들이 나오지 않을까요? 물론 싸고 맛있게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기업'은 분명 할 수 있을텐데…. 그런 마음으로 평가해보겠습니다." –오오츠카 테츠야 셰프
"편의점 빵이 '대량생산'하기 쉬운 제품으로 구성돼있다보니, 모양만 보면 대충 무슨 빵인지 알아요. 트렌드 자료를 보면 일본에선 3~4년 전부터 크림치즈·모찌·쫀득쫀득한 빵 종류가 계속 상위권 랭킹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한·일간 유행 시차가 거의 없는 터라, 국내 제과·제빵 업계에서도 유행이 빠르게 적용되고 있어요. 한국 역시 크림이 많이 들어간 제품, 쫄깃쫄깃한 식감, 가성비 좋은 제품이 대세입니다. 다만 같은 개발자로서 다른 빵들을 평가하려니 부담이 됩니다." –김한민 개발자
"배달 앱의 핵심 제품은 바로 '치킨'이에요.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살은 촉촉한 느낌이 느껴지게, 사진만 봐도 곧 주문을 하고 싶어 지게 만들 수 있어요. 비록 치킨이 주력 상품이지만, 저는 빵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합니다. 같은 '갈색' 음식이라서, 자신 있습니다. SNS에선 정말이지 얼마나 먹음직스럽게 보이느냐도 중요해요. 그래서 편의점 빵을 비주얼 중심으로 평가해보려고 합니다." –장진명 포토그래퍼
"예전에 일본 TV프로그램에서 이런 사람이 나왔어요. 봉지빵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매일 슈퍼마켓과 편의점을 돌면서 한달에 250종의 봉지빵만 먹고 사는 회사원 사연이었어요. 이 여성은 17년동안 그렇게 먹었다는데, '메론빵' 제대로 먹는 법을 소개하더군요. 전자레인지에 5~10초 정도 돌렸다가, 토스트기에 윗부분 쿠키 표면이 살짝 연한 갈색이 될 때까지 구워서 먹으면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최고의 메론빵을 먹을 수 있대요. 저 역시 일본 제과학교 유학시절, 언제나 신제품 빵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편의점에 들렀던 '빵순이'에요. 그래서 이번 평가가 기대됩니다." –황지선 저자
평가원들은 시식 후 제일 좋았던 빵 1개와 맘에드는 빵 2개를 합쳐 모두 3개의 빵을 선택했다. 그 결과는?
좋은 빵으로 가장 많이 거론된 제품은 ‘일본의 스테디셀러’와 유사한 GS25의 ‘모찌롤 플레인’. 공동 2위는 가로수길 카페에서나 볼 법한 ‘레드벨벳’ 색소를 쓴 세븐일레븐 ‘레드벨벳 머핀’, 초코렛과 크림이 듬뿍 들어간 GS25 ‘초코 빅 슈’, 경리단길 유명 티라미수와 비슷한 모양의 GS25 ‘로얄 티라미수’였다. 이어 추억의 과자 ‘후렌치파이’를 크게 만든 것 같다는 CU ‘살구잼 파이’, 스타벅스 스콘에 밀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온 CU ‘초코 스콘’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아래는 구체적인 맛 평가. ‘스압주의보’(스크롤 압박의 줄임말·내용이 길다는 뜻)를 발령한다. 시간이 남아 도는 사람은 일독(一讀)을 권한다.
'오렌지 휘낭시에' 세븐일레븐 1500원
1. 오렌지를 위에 올리는 것보다 잘게 썰어서 안에 넣는게 좋지 않았을까.
2. 편의점 빵이다보니 버터 함량이 낮은 게 아쉽다. 오렌지 껍데기를 졸여 만든 장식은 비싸서 한 줄 밖에 못 올린 듯.
3. 색깔과 모양은 예쁘다. 맛은 뻑뻑해서 우유가 필요하다.
4. 퍽퍽하다. 오렌지 향도, 버터 향도 많이 안난다.
'살구잼 파이' CU 1100원
1. 파이가 더 바삭했으면. 과육이 들어 있으면 좋았을 텐데 1100원이라면 괜찮은 빵.
2. 큰 '후렌치 파이' 맛. 눅눅한 식감에 실망할 수 있다.
3. 후렌치 파이 사과 맛 같은데, 살구잼이라니. 그물망 모양이 좋아서 사진을 먹음직스럽게 찍을 수 있다.
4. 안에 잼이 오렌지나 감귤류 맛인데. 눅눅하다.
'레드벨벳 머핀' 세븐일레븐 1500원
1. 소문의 레드벨벳. 너무 찐득거린다. 조금 더 가벼운 식감이었으면.
2. 요즘 유행하는 레드벨벳. 맛은 화이트 초코렛 맛이랄까. 머핀의 쫀득한 식감도 잘 표현했다.
3. 많이 안 달아서 애매한 맛이다. 컬러는 진중하고 무거운 빨강이라서 고급스러워 보임. 사진을 검정 배경에 찍으면 멋질 듯.
4. 편의점에서 레드벨벳을 볼 줄이야. 굉장히 촉촉하고, 크럼블 소보루가 달콤해서 맛의 조화가 괜찮은 것 같다.
'초코 빅 슈' GS25 2000원
1. 가격 대비 타당한 맛.
2. 공이 많이 들어간 제품. 크림을 두 종류 넣고, 초코렛 토핑까지. 한때 좋아해서 많이 먹었다.
3. 처음부터 끝까지 무조건 달다. 우울할 때 먹어야 할 듯.
4. 크림도 많이 들어있고, 달기도 적당하다. 다만 빵이 두껍고 눅눅하다. 일본에선 아예 부드러운 슈나 바삭바삭한 쿠키슈 제품이 인기다.
'모찌롤 플레인' GS25 2500원
1. 부드럽고, 사이즈가 먹기 편하다. 일본 로손 편의점 모찌롤보다는 덜 쫄깃쫄깃한 듯.
2. 일본 제품을 벤치 마킹한 제품. 빵이 더 쫄깃거렸으면 좋겠다. 크림은 덜 달아도 될 듯.
3. 부드럽고 녹는 느낌. 내추럴한 맛.
4. 인스타에서 많이 봤다. 푹신하고 부드럽고 촉촉하다. 일본 제품보단 크림이 느끼하다.
'찹쌀떡 페스츄리' CU 1200원
1. 이런 맛은 처음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지만, 빵이 '파이'가 아니었다면 더 맛있을 듯.
2. 너무 달다. 떡보단 앙금이 많이 들어갔으면.
3. 떡과 빵이 입에서 따로 놀지 않고 잘 어울린다. 이런 방은 손으로 찢는 장면을 찍어야 촉감과 내용물을 보여줄 수 있다.
4. 아이디어는 좋지만 파이 층이 바삭한 감이 전혀 없다. 다만 빵과 떡을 동시에 먹을 수 있어서 정말 좋다.
'딸기 미니 샌드' 롯데제과 1100원
1. 크림 맛이 너무 기름지다. 문제는 크림.
2. 어느 편의점에나 있는 빵. 고급스러운 맛은 아니지만 익숙한 맛.
3. 워낙 유명한 빵이지만 크림과 빵이 따로 노는 느낌.
4. 식빵이 퍼석하고 크림도 느끼하다. 일본 '런치팩(란치파쿠)'은 땅콩, 딸기는 물론 마가린 꿀, 카레, 사라다, 돈까스, 야끼소바 등 수십 종류가 나온다. 식빵도 촉촉하다.
'초코스콘' CU 800원
1. 스콘 자체가 맛 차이가 나기 어려운 빵이긴 하다. 괜찮다. 초콜릿도 맛있고, 스타벅스 스콘과 별 차이 없다.
2. 너무 뻑뻑하다. 초코 양은 많다. 800원이라면, 모든 게 다 용서되는 맛.
3. 씹히는 맛이 덜하다. 바삭하게 씹히지 않는다. 800원짜리지만 5000원짜리처럼 찍을 수 있는 비주얼.
4. 겉은 바삭하고 속은 퍼슬퍼슬한 촉촉함이 있는 스콘을 좋아하는데, 이 빵은 겉과 속의 구별이 없이 단단하다. 사 먹진 않을 듯.
'위대한 단팥빵' GS25 1100원
1. 단팥이 좀 더 진했으면.
2. 충분히 잘 만든 단팥빵. 유통기한 때문인지 팥이 많이 달긴 하다.
3. 단팥빵 맛.
4. 빵이 촉촉하고 단팥도 많아서 대왕단팥빵보다 낫다.
'대왕 단팥빵' CU 2000원
1. 대단한 크기! 너무 큰 거 아닌가. 왜 이렇게 크지?
2. 갈빗대 모양이라고 해서 '갈비빵'이라고 부르는 모양. 팥이 한 쪽으로 쏠린게 아쉽다. 뽑기를 잘못한 듯. 참고로 요즘 트렌드는 빵 크기가 다시 작아지는 추세.
3. 많이 후드려 맞은 비주얼. 빵이 너무 많이 맞은 것 같다. 맛은 단팥빵 맛.
4. 크기는 정말 훌륭하다. 그에 비해 단팥이 적은 것 같지만 소보루 포인트가 좋다.
'레쓰비 소보루' 세븐일레븐 1200원
1. 좋다. 빵과 소보루 바삭바삭함이 괜찮다. '싼 커피맛'이 강하지만, 밸런스는 괜찮다.
2. 이름 정말 잘 지었다. 빵, 크림, 토핑 모두 레쓰비 맛이 난다.
3. 모카크림이 입에서 따로 노는 느낌. 레쓰비 정말 좋아하는데, 캔커피를 열심히 만드시면 좋을 것 같다.
4. 소보루 양이 적다. 빵 위를 가득 덮었으면 좋겠는데 듬성듬성 있어서 아쉽고, 크림도 느끼한 편이다.
'크림 가득 메론빵' CU 1500원
1. 빵이 덜 익은 느낌. 조금 더 구워야 좋을 듯. 메론향이 너무 강하다.
2. 느끼함을 잡으려고 메론크림과 휘핑크림을 함께 넣은 듯. 껍데기가 바삭바삭하지 않고, 식감과 크림이 잘 안 어울린다.
3. 단면도 예쁘고 색깔도 예쁘다. 맛은 메론향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듯.
4. 괜찮은 것 같다. 크림이 많이 들었다. 메론 소스가 상큼하다. 약간 퍼석하다.
'고구마 슈크림' CU 1200원
1. 파이 식감이 무겁지만, 맛은 생각보다 괜찮다.
2. 고구마 맛이 잘 안 난다. 식감이 별로다.
3. 특별한 장점도 단점도 없는 평범한 빵. 고구마 맛은 안난다.
4. 반죽이 실망스럽다. '떡졌다.' 바삭바삭한 층이 안느껴져서, 베이킹 실패했을 때 반죽 같다.
'로얄 티라미수' GS25 3200원
1. 잘 팔릴 것 같다. 식감이 가벼워서 꽤 큰데도 혼자 다 먹을 수 있을 듯. 오늘 평가한 빵 중에 가장 먹기 좋은 크림.
2. 내 기준에는 많이 느끼하다. 티라미수는 원래 느끼한 맛이긴 하지만.
3. 카페에서 먹는 티라미수 맛.
4. 크기도 크고, 크림 양도 섭섭하지 않다. 커피시럽도 촉촉하고. 다만 치즈 크림에서 치즈 풍미를 전혀 느낄 수 없다. 얼마전 일본 편의점에서 사먹은 티라미수는 2~3종류 치즈를 섞어서 풍미가 훌륭했다. 일본 제품은 좋은 커피와 양주, 바닐라빈까지 재료를 아끼지 않고 사용한다.
'동원 참치마요 빵' '동원 고추참치 빵' CU 각 1500원
1. 빵이 달다. 맵고. 참치에서 감칠 맛이 안난다. 짭쪼롬하고 딱딱한 빵을 썼으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치즈를 올려서 식감을 더해도 좋을 듯.
2. 내용물은 많은데, 수분 때문에 빈 공간이 생겨버렸다. 마요네즈가 더 많았으면 좋겠지만 질척거릴까봐 적게 넣은 듯. 고추참치는 많이 맵다. 김치만두 정도의 맵기.
3. 겉봉지 광고와 너무 다르다. 포장에는 참치가 가득 차있는 것 같은데, 4분의 1은 채워줬으면. 풍성한 재료가 입 속에 꽉 차는 느낌은 기대하면 안 될 듯.
4. 볼륨이 굉장히 좋다. 다른 빵과 달리 만족스러울 정도로 푹신 푹신한데 안이 비었다. 공갈빵 같아 보일 정도. 식사 대용으로 좋겠다. 필링이 절대적으로 적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