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나이에 '이집트의 왕(King of Egypt)'이라 불리는 사내가 있다. 혼자 힘으로 지난 10월 조국 이집트에 28년 만의 월드컵 본선 티켓을 안긴 모하메드 살라(25·리버풀)다. 그의 위상은 '파라오(Pharaoh·고대 이집트 왕)'라고 불리는 이집트 축구대표팀 선수 사이에서도 독보적이다.

살라의 지배력이 최근 이집트를 넘어 축구 종가 잉글랜드까지 닿고 있다. 그는 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9골을 넣어 현재 득점 랭킹 1위에 올라 있다. 지난 두 시즌 연속 득점왕 해리 케인(토트넘), 1050억 사나이 로멜루 루카쿠(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상 8골) 같은 쟁쟁한 공격수를 모두 제쳤다.

‘이집트의 왕’살라의 왼발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지배하고 있다. 지난 19일 사우샘프턴과의 홈경기에서 살라가 왼발로 감아 차 골을 넣는 모습. 살라는 이날 2골을 기록했고, 리버풀은 3대0으로 이겼다.

살라는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포함 14골을 기록, 팀 내 최다 득점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이집트의 왕이 안필드(리버풀 홈경기장)의 왕, 프리미어리그의 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살라는 '번개' 우사인 볼트를 연상시키는 폭발적인 스피드가 무기인 선수다. 100m를 10초대 기록으로 끊는다. 비인스포츠는 "살라는 미끄러운 잔디 위에서 세계적 육상 선수들과 비슷한 속도로 뛴다"고 전했다. 정교한 왼발 킥도 무섭다. 슛 파워가 약하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올 시즌 이마저 극복했다.

왕 대접받는 지금과 달리 살라는 프리미어리그에서 한 번 쫓겨났던 실패자였다. 2010년 자국 리그에서 데뷔한 그는 스위스 FC바젤을 거쳐 2014년 초 첼시로 이적했다. 계약 기간이 5년에 달할 정도로 큰 기대를 받았으나 거친 프리미어리그에 적응하지 못했다. 13경기에서 단 2골만 기록한 채 2014~15시즌 도중 이탈리아로 떠나 임대 생활을 전전하는 처지가 됐다.

피라미드 앞에 선 '이집트 축구왕' - 지난 6월 비시즌 기간 피라미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살라.

이게 전화위복이 됐다. 이탈리아 피오렌티나에서 출장 시간을 늘려가며 감각을 되살린 그는 반년 만에 6골을 넣어 자신감을 회복했다. 지난 시즌엔 AS로마에서 15골을 터뜨려 에이스로 성장했다. 리버풀은 올 시즌 전 명가 재건을 이룰 핵심 선수로 살라를 선택해 영입했고, 리버풀의 베팅은 현재까진 대성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집트의 왕'인 살라지만, 2014년 '국방의 의무' 때문에 축구를 잠시 그만둘 뻔한 적도 있다. 징병제를 시행 중인 이집트에선 남자들이 학력에 따라 1~3년 동안 군 복무를 해야 한다. 살라는 당시 이집트 한 고등교육기관에 속해 있어 입대가 연기된 상태였는데, 이 교육기관이 살라의 등록을 취소하면서 갑작스럽게 군에 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때 국가가 직접 나섰다. 이집트 이브라힘 마흘랍 당시 총리가 정부 교육 담당자, 대표팀 감독과 회의 후 "살라는 군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했다. "이집트 축구에 올 큰 위기를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3년 뒤 살라는 조국에 월드컵 본선 티켓을 안겨 보답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 E조에서 5경기 5골 2어시스트를 올리며 이집트가 가나, 콩고 등을 제치고 본선행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팀이 넣은 7골이 모두 그의 발에서 나왔다. 본선 확정 후 동료와 이집트 팬들이 몰려들어 살라를 어깨 위에 태우고 다녔다.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까지 살라를 찾아와 말했다. "용감했던 살라, 당신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