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의 말에는 물기가 있다. 그 촉감은 그의 눈이 가진 총기와 합을 이루어 기어이 마음에 온기가 돌게 만든다. 처연하게 쏟아내지도, 단호하게 질러내지도 않는 그의 말이 한참이나 관객의 마음을 후비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명징한 기운 때문이다. 악인의 나약함과 선인의 비겁함을 함께 다룰 줄 아는 이 배우는 그 모든 기운을 다스려 밖으로 꺼내 놓는다. 이병헌이 연기하는 인물은 그가 악인이든, 선인이든 결국 사람 냄새가 난다. 그렇다. 결국 사람인 것이다.
실패한 기록에 끌리다
1592년 왜군의 칼에 조선 땅이 훼파되고 얼마 되지 않은 1636년 청군의 총이 국토를 짓밟았다. 백성의 시신이 산처럼 쌓여가던 험악한 시절에 말로 길을 내고자 한 사람이 있다. 사대부들에게 말은 그저 글이고, 명분이었을 때 말로써 칼을 막고자 한 사내가 있다. 화살이 쏟아지는 벌판에 홀로 서서, ‘삶이란 죽음보다 강한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치욕을 견딘 이는, 끝내 ‘나라를 팔아먹은 자’, ‘소인(小人)’으로 기록되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이병헌은 처음부터 최명길을 마음에 두었다. 〈남한산성〉 시나리오가 그에게 도달했을 때, 책은 그 자체로 완전한 한 편의 작품이었다. 다만 “최명길의 말을 내 입으로 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그를 작품 속으로 불러들였다. 병자호란 당시 조정은 척화파와 주화파로 나뉘었다. 사대부 대부분은 ‘청을 배척해 명과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척화파의 중심에 김상헌이 있었다. 오랑캐의 다리 사이로 지나며 목숨을 구걸하는 대신, 떳떳한 죽음을 택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우뚝했다. 최명길은 아무리 명분으로 포장한들,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알았다. 적에게 쫓겨 들어온 남한산성은 버틸 수는 있으나 이길 수는 없는 성이었다. 언젠가 부서질 문이라면, 먼저 열어 죽음을 막아야 했다. 원작자인 김훈의 말대로 “밖에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그 모진 싸움의 끝은 ‘간신배인 최명길의 목을 달아 치욕을 씻으라’는 상소로 이어졌다. 이병헌이 연기한 최명길은 이 모든 소리를 그저 담담히 바라봤다.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위해 읍소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백성을 위해 엎드렸고, 임금을 위해 울었다. 그 장면은 제법 슬프고 고달팠다.
“최명길뿐 아니라 모두에게 모진 시간이었을 겁니다. 최명길이라서 특별히 더 힘들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47일은 모두에게 실패한 시간이었고, 그 시간을 견디는 건 임금이든, 백성이든 어려웠을 거예요. 최명길이 슬퍼 보였다면, 그가 살았던 시대가 슬펐기 때문이겠죠.”
〈남한산성〉을 빠져나온 이병헌의 태도도 최명길과 다름없었다. 자신이 맡은 인물의 무참함을 드러내기보다, 그가 살던 시대의 큰 그림을 조망했다. 혹자는 ‘왜 김상헌이 아닌 최명길을 맡았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제야 그는, 그가 선택한 인물이 사랑받기 어려운 인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명길이 좋았다. 무엇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치욕스럽다’고 덮어버리지 않고, 담담히 바라보는 작품의 시선이 좋았다.
“지금의 관객에게 이 작품이 다가갈 수 있을지를 걱정했습니다. 스펙터클이 대단한 작품도 아니고, 보고 나서 후련한 결말도 없어요. 전쟁 중이라고 하지만 총과 칼이 겨누는 시간보다 말과 글로 싸우는 시간이 길죠. 그 담담한 전개가 받아들여질지 조바심이 나긴 했어요.”
운명처럼 다가오는 작품들
이병헌의 아내 이민정은 영화를 보고 붉어진 눈으로 상영관을 빠져나왔다. ‘좋은 영화였다’고 거듭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에 조금은 안심이 됐다. 〈남한산성〉이 동시대의 관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겠다는 믿음이 들었다. 〈남한산성〉으로 마음이 무너진 건 그의 아내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남한산성〉은 추석 연휴 시작과 함께 극장가를 점령했다. 끌어모을 수 있는 기술과 자본을 총동원해 관객의 오감을 자극하는 할리우드 영화 〈킹스맨〉과의 접전에서도 승기를 잡았다. 불안했지만, 좋은 선택이었다. 자신의 감(感)을 믿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저한테는 이 인물만큼의 결단력은 없어요. 대부분의 영역에 ‘결정 장애’가 있을 정도예요. 주변에서는 연기에 100을 쓰느라 다른 분야에서는 바보가 된 것 같다는 이야기도 해요.(일동 웃음) 그런데 작품을 볼 때는 달라요. 제 마음의 움직임을 명확하게 느껴요. 그 명확한 느낌이 오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죠.”
‘이병헌이 선택한 작품’이라 믿고 본다는 말에는, 그가 보여줄 연기뿐 아니라 그의 선택의 촉을 믿는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전작은 〈싱글라이더〉였다. 한없이 쓸쓸한 기러기 아빠의 뒷모습이 그의 어깨에 살포시 얹혔다. 상업영화를 만들어 본 적 없는 이주영 감독은 빼어난 영상미로 〈싱글라이더〉를 완성했다. 그는 “이병헌의 참여가 영화를 완성하는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이 작품 역시 책을 먼저 받아 본 이병헌이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표현했다. 그가 책을 읽고 난 뒤 느꼈던 감정이 한동안 마음을 흔들었다. 〈번지점프를 하다〉처럼 슬프고 아름다운 영화가 나올 것 같았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하는 영화가 있고, 본 사람들이 좋았다고 느꼈으면 하는 영화가 있어요. 이 둘은 아주 비슷한데 또 달라요. 흥행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적은 수라도 분명히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믿음이죠. 일단 제가 좋아하는 영화의 색깔이 있기도 하고요.”
평소 이병헌은 이성보다 감성을 많이 사용한다. 이성을 사용해야 하는 일에는 다소 서툴다. 그래서인지 모른다. 최명길이 가진 이성적인 면이 그에게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명길은 자신이 말을 하는 동시에, 자신의 말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관찰자다. 그 때문에 그는 말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자신과 반대편에 선 인물이라도 기꺼이 그를 ‘충신’이라 말할 수 있다.
“때로는 이 인물이 무섭게 느껴지더라고요. 조금 전까지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이다가, 나중에는 ‘김상헌은 이 조정에서 유일한 충신’이라고 말하잖아요.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반박했으면서도요.”
그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나라를 사랑하는 한 가지 마음’에서 뻗어 나온 두 가지 생각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상헌을 연기한 김윤석은 그가 ‘언젠가 만나보고 싶었던’ 배우였다. 두 사람이 한 페이지 분량의 말을 쏟아내며 척화와 주화를 주장하는 장면은 〈남한산성〉의 클라이맥스다. 이 장면에서 에너지가 팽팽해야 결국 영화도 기울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무척 좋은 배우들이 모인 현장이었습니다.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는 자리였죠. 김윤석 배우는 아주 뜨거운 배우였습니다. 불을 토해내는 것처럼 대사를 토하더군요. 그 에너지를 잘 받아서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가 있어야 치고받는 느낌이 나니까요.”
배우가 느낀 것을 관객도 느낄 수 있다면
김윤석이 불을 토하듯 대사를 쏟아내면, 이병헌의 대사는 물처럼 흐른다. 시사회에서 그가 놀란 순간은 현장에서 웃음이 터진 곳에서 관객들의 웃음도 터질 때였다. 영화 현장에서는 이미 배우와 스태프 간에 시간과 관계가 쌓여 있기 때문에 시나리오에서는 한없이 진지한 장면이지만, 현장의 분위기로 웃음이 터질 때가 있다. 그 내밀한 느낌을 관객도 느꼈다는 게 그는 놀라웠다.
“영의정을 연기한 송영창 선배님은 현장에서도 저희에게 웃음을 주셨어요. 일단 목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하신지, 좌중을 압도하는 힘이 있으셨죠. 거기다 대신들이나 왕이 뭐라고 하면 입을 삐쭉삐쭉 하시잖아요. 그런 디테일은 현장에서만 보이거든요. 근데 관객들이 그런 포인트를 정확히 알더라고요. 신기했죠.”
〈남한산성〉의 왕은 인조다. 조선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임금으로 꼽히는 인물 중 하나다. 더구나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좌에 앉은 인물이다. 그 인조반정에 앞장선 인물이 최명길이다.
“아이러니하더라고요. 이전 사극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광해를 맡고, 다음 작품에서 광해군을 몰아낸 최명길을 맡았다는 게요. 그런데 결국 두 인물을 대하는 제 마음은 같았어요. ‘광해’에서도 광해가 묻거든요. 정말 백성을 위하는 게 무엇이냐고요. 최명길을 움직인 힘도 같아요. 무엇이 백성을 위한 것인가, 어떤 왕이 진짜 왕인가라는 질문이죠.”
아이러니한 장면은 또 있었다. 추석 시즌, 〈남한산성〉 무대인사로 바빴던 이병헌은 가족과 함께하기가 어려웠다. 대신 이민정은 TV를 틀어두었는데, 아들 준후가 마침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 있었다. 왕이 된 광해가 이에 김을 붙이고 웃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민정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추석 때 TV에서 광해 방송해서 아들이 보게 되었는데… 하필 이 장면”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사극을 한 게 연기를 시작하고 한참 지난 뒤예요. 처음에는 톤을 잡기가 어렵더라고요. 뭔가 흉내 내는 기분도 들고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하면서 결국 그 시대의 말도, 사람의 기억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믿고 하는 말이면, 보는 사람도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남한산성〉의 개봉과 홍보로 정신이 없는 시기, 그가 시간을 내어 찾은 곳이 있다.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7’ 콘서트다. 이곳에서 그는 배우 히스 레저를 추모하는 글을 읽었다. 히스 레저는 1979년 태어나 2008년 생을 마감했다. 그의 인생작인 〈다크나이트〉에서 조커 역을 맡은 그는 촬영 후 돌연 세상을 떠났다. 〈다크나이트〉의 음악감독이던 한스 짐머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 공연을 열었고, 이 자리에 이병헌을 초대했다. 한스 짐머와 이병헌은 〈터미네이터 제네시스〉에서 인연을 맺었다. 이병헌은 이 자리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 그에게 두려움이나 주저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찍은 모든 장면은 강렬했고 모두를 압도했습니다. 스크린을 통해서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우리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았습니다… 조커는 분노에 가득 찬 무질서하고 무자비한 망나니인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가장 솔직한, 복잡하고도 매력 있는 캐릭터였습니다.”
이는 히스 레저를 추모하는 글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한 해설이기도 했다. ‘스크린을 통해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우리를 꿰뚫어 보는 느낌’, 한스 짐머가 이병헌의 목소리를 통해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이유는 아마 이병헌이 그 느낌을 알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는 그 세계에 있고 우리는 이 세계에 있지만 이 두 세계가 사실은 연결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 결국 삶을 살아내는 건 사람이라는 결론. 이병헌의 말과 눈에는 그런 초현실적인 느낌이 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연기로는 흠잡을 데가 없다”는 말이 터져 나오게 만든다.
1636년, 임금과 조정이 적을 피해 숨어든 남한산성은 지옥이었고 치욕이었다. 그곳에서 살아 나온 한 남자가 있다. 그 폐허에는 이듬해 기어이 냉이가 돋았다. 그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 나와 관객의 눈을 바라본다.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은 지옥인가, 천당인가. 그 세상의 지옥도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그가 온몸으로 던진 질문에 이제는 우리가 대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