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는 어벤져스에서 왕따인가?

토르는 은하계에서 가장 융성한 행성 아스가르드의 왕위 계승자이며 천둥의 신이다. 은하계를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아스가르드의 위용에, 대적하는 적들이 잊을만하면 자꾸 나타나니 토르는 동분서주 바쁘기만 하다. 이 와중에 지구를 지키는 어벤져스로서 임무를 다소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고 '어벤져스 : 시빌 워'에서는 토르를 볼 수 없었다.

그래선지 다른 나라 못지 않게 마블영화를 사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상대적으로 토르는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에 비하면 그 명성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토르' 시리즈의 흥행성적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아이언맨 3'이 관객수 900만을 넘었고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의 관객수가 800만을 훌쩍 넘을 동안 '토르 : 다크월드'는 300만명을 간신히 넘겼다.

'토르 : 다크월드' 중에서

'토르'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사실 우리 관객들이 공감하기에는 너무 판타지(fantasy)하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스케일이 너무 크고 공간이동 등의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빈번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도무지 일반관객들에겐 이야기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우주적 스케일의 '토르', 귀여움으로 관객에게 어필하다

노쇠한 오딘의 뒤를 이어 아스가르드를 지켜내야 하는 토르는 지구인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사실상 미미한 지구인들의 삶과는 상관이 없으니까. 그런데 '토르 : 라그나로크'를 보면 관객들의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울끈불끈 근육은 더 커진 토르가 귀여워진 것이다. 게다가 그 긴 머리가 잘려지니 '잘생김'이 업그레이드 되었다.

'토르 : 라그나로크'의 최대 매력 포인트는 '귀여움'이 아닐까 한다. 어벤져스에서 제일 덩치 큰 두 히어로 토르와 헐크가 콤비가 돼서 쏟아내는 만담 개그가 웃기기도 하거니와 무척 귀엽다. 의뭉스러운 로키도 이 개그 공방전에 가끔씩 끼어들어 몇 마디 섞으니 그 재미가 더하다. 마블의 세계에서 다소 장중하고 무게감 있었던 토르가 이렇게까지 가벼워져도 되나 살짝 걱정이 될 정도.

'토르 : 라그나로크' 중 토르와 헐크

많은 팬들이 '가디언즈 갤럭시'를 떠올릴 정도로 '토르 : 라그나로크' 편은 휘황찬란한 영상이 압권이다. 영화의 주 무대인 사카아르 행성은 그야말로 총천연색의 향연이다. 우주의 쓰레기가 모이는 이 행성은 더럽고 복잡해도, 화려하고 매력적이다. 토르를 탄생시킨 잭 커비의 코믹북 일러스트에서 영감을 받아 세워졌다는데, 스크린에 펼쳐지는 사카아르는 정말로 만화 같다. 사카아르의 지배자가 즐겨 타는 파티용 우주선에서 미사일 대신 폭죽이 터지는 장면은 그야말로 작정하고 터뜨린 비주얼 파티다.

얼 빠지게 웃기고 현란하네

이렇듯 '토르 : 라그나로크'는 흥행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 관객들을 계속 웃게 한다. 그리고 아이맥스관을 꽉 채우는 영상은 그 흥을 더욱 북돋아준다. 특히 발키리 부대와 해라의 전투 장면, 그리고 각성한 토르가 온 몸에서 번개를 뿜어내는 장면 등은 황홀할 지경이다. 영화를 계속 보다보면 얼이 빠져버린 듯한 기분도 느껴진다.

'토르 : 라그나로크' 스틸

어쨌든 '토르 : 라그나로크'는 마블 시리즈를 풍성하게 하는 등의 제 역할을 다 했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안에서 자기만의 세계도 공고히 했다. 그리고 마블 프로젝트는 계속해서 관객들에게 소개되기를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가장 가깝게는 '블랙 팬서'가 내년 초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이어서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가 대기중이다. '인피니티 워'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로서 벌써 19번째 리스트다. 10년 동안 20여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며 마블의 세계는 무한 확장 중이다.

마블의 팽창하는 세계관, 감당할 수 있겠는가

'토르 : 라그나로크'를 신나게 즐기긴 했지만, 어떤 피로감이 영화에 대한 감흥의 끄트머리를 잡고 뒤따라오고 있음을 깨닫는다. 스크린 밖으로 흘러 넘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온갖 흥미로운 요소가 영화 속에 그득그득 담겨 있고, 이야기는 은하계 밖으로까지 팽창하는 느낌이다. 이 어마어마한 서사를 마블은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제작진들이 이 이야기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관객인 나는 또 이 넓디 넓은 세계관을 감당할 수 있을 지 부담감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토르 : 라그나로크' 스틸

이 고민은 관객의 몫이 아닌 제작사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마블 시네마를 사랑하는 관객으로서는 앞으로 줄줄이 대기 중인 마블의 영화들이 얼마나 더 덩치가 커져야 전작들을 넘어설 수 있겠는지 그 스케일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스케일을 키울 수 있다손 치더라도 관객들이 점점 커지는 마블 영화의 덩치를 계속해서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점점 더 요란뻑쩍지근해지는 시리즈에 벌써 피로감을 고백하는 관객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10여년 동안 천문학적인 흥행 수익을 벌어들이며 세계관을 확장해온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분명, 할리우드에서 오는 블록버스터류의 영화들 중에서 현재 가장 흥미로우며 영향력 있는 콘텐츠임은 확실하다. 언제 이 세계관이 마무리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를 즐기는 동시에 점점 덩치가 커지는 시리즈의 위용에 걱정을 놓지 못하는 팬들이 늘고 있다. 제작진들의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 마침내 다가온 것 같다.

[수퍼히어로가 먹여 살리는 할리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