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두 사람이 만나 헤어진 뒤 알았습니다. 김 기자가 손가방을 카페 의자에 걸어두고 나온 걸. 오누키 특파원에겐 좀처럼 없는 실수입니다. 동년배, 비슷한 출산 시기, 마감 시한 명확한 직업. 기억력 저하 요소는 비슷할 텐데 두 사람 왜 이리 다를까요.
김미리(이하 김): 얼마 전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점심 먹고 들어오다가 깜짝 놀랐어요. 점심 먹고 카페 들렀는데, 지갑 뒤에 빳빳한 판이 보이는 거예요. 식당에서 계산서 끼우는 판을 들고 온 거 있죠.
오누키(이하 오): 하하. 그걸 가지고 오셨어요?
김: 고깃집 갔다 코트 안에 앞치마 두르고 온 적도 있어요. 친구들한테 얘기했더니 카페에서 진동벨 들고 온 경우도 많더라고요. 한 친구는 밤에 자려 누웠는데 핸드백 안에서 뭐가 울리더래요. 뒤져보니 낮에 길 건너편 카페 갔다가 무심결에 들고온 진동벨이었다네요. 다음날 되돌려 줬더니 마감 시간에 직원이 없어진 진동벨 찾으려 울린 거였대요. 분실하면 자기들이 물어야 하는데 돌려줘서 고맙다 했다더라고요. 다들 왜 이리 정신이 없는지.
오: '정신없다'. 참 한국다운 표현이에요. 일본말로 직역하면 기절하거나 의식 잃은 상태가 되거든요. 번역할 적당한 단어가 없단 얘기는 일본 사람들이 정신없을 때가 별로 없단 얘기겠죠? (웃음).
김: 너무 바쁘거나 경황없어 집중 못 하는 상태라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깜빡깜빡하고.
오: 아, 한국 사람들 습관적으로 하는 표현 3종 세트 떠올랐어요. '바빠서' '정신없어서' '깜빡했어요'.
김: 저도 입에 달고 사는 말이네요.
오: 바쁘다가 일본어로는 'いそがしい(이소가시이)'인데 일상생활에서 '나 바빠'라고 말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실례니까.
김: 바쁘다는 게 왜 실례가 되지요? 진짜 바쁠 수도 있는데.
오: 인식 차가 있어요. 누구나 다 바쁜데 왜 굳이 대놓고 말하나 싶은 거죠. 무언가를 안 하고, 잊어버렸는데 바쁜 게 어떻게 구실이 될 수 있나 싶기도 하고요.
김: 약속 자리에서 바빠서 먼저 자리를 떠야 하는 경우를 보면 '너만 바쁘냐?'는 생각보단 '딱하다. 벌어 먹고살기 다들 참 힘들구나' 동병상련부터 들어요. 나도 바빠 정신없고 깜빡하니, 남이 바빠 정신없어 깜빡하는 것에도 관대해지고. 그렇다고 상대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되겠지만.
오: 일본에선 바쁘다는 건 자기 관리를 제대로 못 한다는 걸로 받아들여져요.
김: 핑계가 아니라 진짜 쏟아지는 업무 때문에 용량 초과될 때도 많아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죠.
오: 빨리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이 마음을 더 급하게 만드는지도요. 한국에선 일을 빨리하는 게 정확하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데 일본은 반대예요. 시간은 좀 더 걸리더라도 정확한 게 더 중요하죠. 한국 사람들 보면 늘 뭔가에 쫓기는 듯해요.
김: 신속한 업무 처리. 일 잘하는 직장인의 제1 덕목으로 꼽히죠. 조금 느리면 '쟤는 느려 터졌네. 숨통 막히네' 잔소리 듣기 십상이죠. 그 소리 싫어 빛의 속도로 이 일 해치우면 또 저 일이 떨어지고. 결국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만 일이 몰리는 악순환이 생겨요. 일의 절대적인 양이 많으니 과부하가 걸려 까먹는 것도 많아지고.
오: 일본에선 저더러 꼼꼼하단 사람 없었는데 한국에선 완벽주의자란 얘기 종종 들어요. 몇 달 전 한국 집과 일본 집을 비교한 저희 수다 기억나시죠? 그때 "일본 사람들이 디지털록은 불안해서 못 믿어 열쇠 가지고 다닌다"고 한 제 말에 '열쇠 잃어버리면 더 위험한 거 아니냐'는 리플이 많이 달렸더라고요. 그거 보며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일본에선 한국만큼 물건 잃어버리는 사람 많지 않다고.
김: 어쩌면 디지털록이 '정신없이' '바빠서' '깜빡깜빡하는' 한국의 3종 세트가 낳은 한국의 문화일지도요!
김미리·'friday' 섹션 팀장
오누키 도모코·일본 마이니치신문 서울특파원
※한국과 일본의 닮은꼴 워킹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