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너무 무서워서 엄마 뒤에 숨어 TV 화면을 겨우 흘깃거렸던 기억이 정말 생생하다. 그때 내 나이가 초등학생쯤 됐으려니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알아보니 고등학생씩이나 됐던 때였다. 그때 TV에서는 목이 없는 중학생의 심령사진이 방송되고 있었다.
SBS '토요 미스테리 극장'은 1997년 6월에 첫방송을 했으며 첫회에 방송된 것이 바로 필자가 TV를 보며 가장 큰 공포를 느꼈던 '심령사진'편이었다. '토요 미스테리 극장'은 정통 시사 프로그램의 포맷으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사연을 꽤나 진지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덕분에 '토요 미스테리 극장'은 첫방송 후 "너무 무섭다"는 시청자들의 항의가 쏟아졌으며 4회부터 '토요 미스테리'라는 애초의 제목에서 '극장'이 추가됐다. '극장'이라는 단어를 넣음으로써 이 프로그램은 허구라는 뉘앙스를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당시로서는 매우 새로웠던 '토요 미스터리 극장'은 이후 약 2년 반 동안 방영되었고 매주 밤마다 시청자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아주 실감나게 들려주었던 훌륭한 스토리텔러였다. 그런데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준 스토리텔러는 이 프로그램 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약 9개월여 전부터 MBC에서는 '이야기 속으로'라는 다큐드라마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었다.
'토요 미스터리 극장'과 '이야기 속으로'는 대한민국에서 떠도는 불가사의하며 공포스러운 이야기들이 총망라돼 시청자들에게 소개됐던, 거의 유이(唯二)한 공식적 창구였다고 생각된다. 실화는 아니지만 다큐멘터리로 포장하여 설득력 있게 시청자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어줬고, 관련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도 크게 키웠다. 그 중 아직도 사람들이 찾는 전설의 에피소드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몇 편을 찾아보았다.
"따뜻따뜻 하니? 퐁신퐁신 하니?"
이 이야기는 병 들어 죽은 어느 아낙의 한이 목화솜에 깃들어, 이 목화솜으로 만든 이불을 덮고 자는 사람에게 귀신이 씌어 고통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이불귀신은 나타날 때마다 "따뜻따뜻 하니? 퐁신퐁신 하니?"라고 말한 뒤 이불 주인을 죽이려고 덤빈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귀신이 씐 당사자는 결국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말았다.
'이불 속의 비밀' 편은 그 많았던 에피소드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이야기다. 탈북자의 사연을 극화한 이 에피소드는 지금 다시 보니 꽤 정성 들여 재연극을 구성했던 것 같다. 연기자들의 대사도 북한 사투리에 제법 충실하고 실제 해당 지방에서 쓰는 언어를 각주까지 달아 소개했다.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인 탈북자를 직접 찾아가 직접 겪었다는 이야기를 인터뷰하기까지 했다. 실제 주인공이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이 '이불귀신'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니 그 공포가 더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 사람에게는 낯설기만 한 북한 어느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니 왠지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 법도 하다. 장롱 문을 여니 이불 위에 귀신이 앉아 있는 장면은 지금 봐도 등골이 오싹하다.
이 에피소드는 탤런트 이창훈이 드라마 '전쟁과 사랑' 촬영차 필리핀 모 호텔에 묵었을 때 일어난 일을 재연한 것이다. 그 호텔에서는 아버지, 그리고 두 딸로 보이는 세 귀신이 종종 목격되었는데 이창훈은 이 중 딸 귀신들을 목격한다. 이창훈의 인터뷰와 함께 재연장면이 이어지면 귀신 목격담은 신빙성을 갖게 되고 시청자들은 속절없이 공포에 떨게 된다.
뿐만 아니라 호텔에서 귀신의 기운을 경험한 사람이 이창훈만 있었던 게 아니었으니, 동료 배우들의 추가 증언이 연달아 계속되고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이 모든 인터뷰는 실제 호텔에 직접 당사자들이 가서 동작까지 곁들여 이뤄진다. 이 이야기를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나.
그밖에 '열녀비의 한'이라는 에피소드에는 열녀 윤씨의 비를 옮겼다가 마을 남자들이 수십명 가까이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을 사람들은 남자들이 자꾸 죽어나가는 이유를, 열녀비를 웬 남자 무덤 옆으로 이장한 것 때문이라고 앞다퉈 말한다.
'저주받은 사택' 편에서는 경남 진해의 어느 사택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제보를 받고 제작진들이 실제 이 사택 안으로 직접 가서 밤을 새기도 했다. 제보자의 인터뷰는 바로 한밤중 이 사택 안에서 조명 하나 달랑 키고 이뤄진다.
'이야기 속으로'가 시청자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사연의 고증을 철저히 하고 사연의 실제 주인공들이 출연해서 직접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귀신 비슷한 헛것을 보는 일이 심심찮게 있는 법인데, 이러한 소소한 사연들을 '이야기 속으로'는 굉장히 성실하고 진지하게 대한다. 마치 탐사 보도 프로그램을 찍듯 정성을 들인 제작진들의 노력 덕분에 '이야기 속으로'는 시청자들에게 훌륭한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해냈다.
'토요 미스테리 극장'은 '이야기 속으로'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공포의 강도는 더 셌다. 첫 방송에서 심령사진을 다룬 후 폭발적인 시청자들의 반응에 내용을 다소 순화시키기는 했지만 그래도 '토요 미스터리 극장'의 귀신은 지금 봐도 여전히 깜짝 놀랄 정도로 무섭다.
'죽음의 자동차' 편은 일본에서 건너 온 이야기로 아직도 많이 거론되는 에피소드다. 같은 중고차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이 이어지자 한 형사가 그 원인을 추적하는 내용인데, 이 중고차에 깃든 원혼의 모습이 범상치가 않다. 그 귀신은 칼을 들고 운전자를 위협하고 있었는데 살기가 등등하다.
결국 죽어버린 중고차 주인의 모습도 끔찍하게 묘사한다. 모자이크 처리를 하긴 했지만 피투성이 시체의 모습을 비교적 실감나게 보여준다. 잔인한 장면에 대부분에는 시퍼런 조명이 거의 함께 하고 있다. '토요 미스터리 극장'의 귀신을 비추는 시퍼런 조명은 거의 이 프로그램의 상징과도 같다.
대한민국 지방 구석구석에서 사연을 찾아내 다소 토속적인 느낌을 주는 '이야기 속으로'와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서였는지 '토요 미스터리 극장'은 외국의 사연을 제법 많이 소개했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국가의 사연이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서양의 괴담으로는 美 워싱턴 주의 한 정신병원 이야기가 있었다.
미국에 사는 교포의 제보를 받는 형식으로 소개된 '웨스턴 스테이트 정신병원' 에피소드는 20세기 초 서양 정신병원의 비인간적인 치료 실태를 공포스럽게 묘사해 인상적이었다. 또한 제보자가 직접 촬영한 병원 모습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서 사실성도 높여주었다.
제작진들의 정성이 듬뿍 담겨 제작된 '이야기 속으로'와 '토요 미스터리 극장'은 각각 1년 반, 2년 반 가량 인기리에 방송되었으나 내용이 너무 무섭다는 이유로 또 너무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시청자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아 결국 종영됐다. 두 프로그램은 약속한 듯이 거의 같은 시기에 함께 끝났다. TV의 스토리텔러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방송을 통해 들을 수 있는 '머리맡 이야기'는 이제 추억이 되었다. 특히 공포 괴담은 흥미로운 내용 전개로 듣는 이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이야기다. 결말까지 듣는 이를 끝까지 긴장시키고 집중시킬 수 있는 이야기도 공포를 곁들이면 좀 더 수월하다.
그런데 이제는 공포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사라지고 없다. 올해 한국에서 만들어진 공포영화가 몇 편이나 있었나.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 공포 드라마는 몇 년 동안 씨가 말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무서운 이야기 못 듣고 못 본다고 해서 우리 삶이 뭐 그리 큰 해를 입겠나. 그런데 따분하고 팍팍한 일상 속에 절어 살다 보면 내가 갖고 있는 다양한 감정이 어딘가에 매몰돼버린 듯한 암담함이 느껴질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럴 때 유독 무서운 이야기를 듣거나 보고 싶어진다. 원초적인 인간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무서운 이야기를 듣다가 겁이 나서 이불을 뒤집어 쓴 호기심 가득한 한 아이로 돌아가는 기분 말이다. 언젠가는 좀 더 다양하고 많은 납량특집이 각종 매체에서 활발하게 만들어지는 시절이 다가올 것이다. 기대감을 갖고 그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