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명이라니, 1시간 반이면 돌아보는 작은 섬에 참 많은 사람이 다녀갔네요."
최호숙(81·사진)씨는 "기적 같은 일"이란 말을 반복했다. 그가 설립한 경남 거제의 식물원 '외도 보타니아'는 지난 17일 관람객 2000만명을 돌파했다. 1995년 4월 15일 첫 관람객이 다녀간 이래 22년 만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 있는 외도는 최씨가 소유한 섬이다. 그곳에 조성된 보타니아는 꽃과 야자수 등 식물 1000여 종으로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내 '남해의 파라다이스'라 불린다.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최씨는 "이젠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새벽 꽃시장에서 보타니아에 어울리는 꽃을 발견했을 때 기쁨은 여전하다"고 했다.
그가 외도를 처음 만난 건 1969년이었다. 서울 동대문에서 옷감 장사를 하던 남편 고(故) 이창호씨가 낚시를 즐기다 외도 경치에 반해 섬을 사겠다고 나섰다. "재클린 여사가 그리스 거부 오나시스와 재혼할 때 스콜피오스 섬을 통째로 선물받았죠. 남편에게도 그런 낭만이 있나 싶어 설�어요."
막상 가보니 버려진 섬이었다. 물과 전기는 물론 선착장조차 없었다. "한밤중에 간신히 도착했을 때 주민 3명이 불붙인 솜방망이 들고 마중 나왔다"며 "왜 왔을까 후회막심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최씨는 3일 만에 외도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깎아내린 절벽 아래 철썩철썩 파도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황홀했어요. 모든 고민과 괴로움을 위로받는 느낌이었죠."
부부는 3년간 4만5000평을 매입해 감귤 농사도 짓고 돼지 농장도 운영했지만, 한파와 구제역 파동 탓에 실패했다. 씨를 심어 기른 동백나무 5000그루를 팔아 첫 수익을 냈다. "남해안 관광사업 붐이 일어났죠. 제주 한림공원처럼 식물원으로 가꾸면 성공할 것 같았어요." 일주일 중 3일은 외도, 나머지는 서울에서 지냈다. 꽃과 나무, 조각품을 서울에서 사들여 외도로 옮겼다.
"이 악물고 했죠. 집에 손님 한 명 초대하기도 부담스러운데, 내 섬에 돈 내고 오는 손님 맞는 일은 오죽했겠어요." 22년이 흘러 연간 100만명 찾는 관광지가 됐다. 그 사이 남편 이씨가 2003년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키 큰 활엽수를 심길 바랐지만, 저는 아기자기한 식물을 키우고 싶었어요. 자주 다퉜던 게 후회스러워요."
요즘은 건강이 좋지 않아 한 달에 한두 번만 외도에 간다. 운영은 자녀들에게 넘겼다. 하지만 "마음이 참 힘들다"고 했다. "식물에 이름 새기거나 낙서하는 젊은이가 많아요. 소셜미디어에 인증 사진 올리는 것도 좋지만, 다 같이 즐길 수 있도록 식물을 아껴줬으면 합니다." 그의 다음 꿈은 '외도 패션쇼'다. 이미 두 차례 패션쇼 모델로 서 본 경험이 있고, 워킹 연습도 하고 있다. "다양한 연령대의 모델들을 외도로 초청해 꽃과 바다를 배경으로 근사한 패션쇼를 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