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라 모더존-베커, ‘호박 목걸이를 한 자화상’, 1906년, 캔버스에 유채, 61×50.2㎝, 스위스 바젤 미술관 소장.

서양 미술사에는 수많은 여성 누드화가 있지만 그 대부분은 남자 화가가 남자 관객을 위해 그린 것이다. 20세기 이전까지 여자가 정식 교육을 받는 것도 어려웠고, 설사 드물게 화가가 되었더라도 나체를 그리는 건 불경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독일 화가 파울라 모더존-베커(Paula Modersohn-Becker·1876~1907)의 자화상은 여자 화가가 자신의 누드를 그림으로 남긴 최초의 예다.

나체에 목걸이만 걸고 있는 화가는 푸른 하늘 아래 짙푸른 수풀을 등지고 서서 꽃을 머리에 꽂고 양손에도 한 송이씩 들었다. 동그란 핑크색 꽃송이가 그녀의 가슴과 닮았다. 모더존-베커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는 그 순간의 자유로움을 즐기는 듯 만족스럽고 여유 있는 표정이다. 나무를 깎아 만든 것처럼 투박한 그녀의 얼굴, 푸른색과 붉은색, 초록색을 대담하게 칠해 명암을 표현한 건장한 육체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왔던 여인의 누드, 즉 보는 이의 욕망을 자극하는 관능적인 미가 드러나지 않는다. 모더존-베커는 20세기 초, 표현주의를 이끌었던 동시대 화가들인 마티스, 피카소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선구자였으나 불행히도 31세에 요절한 다음 오랫동안 잊힌 화가였다.

모더존-베커는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성격이었다. 결혼을 했으되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는 화업에만 충실하고자 했고, 서른이 된 다음에 계획대로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출산 후 다리에 통증을 호소하던 그녀는 침대에 누워 지내다 19일 만에 갓난아기를 한 번 품에 안아 보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전해진다. “가엾기도 하지.” 정말 가엾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