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소설 속에서 '나' 또는 '그'로 지칭될 때 그 사람은 현실에서 소설 속으로 이민(移民)을 가게 된다. 다만 작중 인물에게는 주민등록번호가 없다. 작가는 제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기도 하고, 남의 이야기를 제 이야기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것이 인칭(人稱)이다.
소설가 김선재(46)가 내놓은 연작소설집 '어디에도 어디서도'의 모티프(motif)는 아이의 죽음이다. 물난리로, 화재로, 실직으로 아이를 잃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젊은 시인과의 이별도 아들의 죽음에 비유된다. 이 소설들을 쓸 때 작가의 머리를 가득 채운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우리 모두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작가는 '나'를 '그'로 바꾸고 '그'를 '나'로 바꾸는 사이 스며드는 속임수에 대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한다. 인칭은 인간이 발명한 위험한 가면 중 하나다. 인칭을 통해 '주체인 나'로부터 '대상인 나'를 분리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을 1인칭으로, 타인을 3인칭으로 말하는 것 외에 달리 말하는 방법을 모른다. 소설의 재미는 이러한 인간의 운명을 수정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데서 온다.
김선재는 '소설을 서술하고 있는 나'는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소설 속 '나'는 '그'처럼 규정될 수 있는 존재로 나타나는 반면 '그'는 '나'처럼 규정될 수 없는 존재로 나타난다. '나'와 '그'로 불리는 작중 인물은 '나 속의 그' 또는 '그 속의 나'를 드러낸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하는 1인칭 소설에서도 김선재는 연하의 남자 친구를 어떻게 해도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심연으로 묘사한다. 김선재의 소설에 나오는 '그'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나'이다.
김선재의 소설에는 전지적 화자 혹은 중립적 화자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를 특정 인물의 시점으로 두고 촬영하는 영화 속 시점 화면(point of view shot)처럼 서술된다. 수록작 '아무도 거기 없었다'에서 화재로 일곱 살 난 아들을 잃고 눈이 먼 아내의 기억은 사진사 남자의 시선으로 드러난다.
또 다른 수록작 '외박'은 화자와 인물이 서로 위치를 바꾼다. 치매 걸린 어머니를 보살필 때 아들은 2인칭 인물이 되고, 산사태로 아이 밴 채 죽은 아내를 돌아볼 때 아들은 1인칭 화자가 되고,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는 인물의 시각에서 서술하던 화자가 1인칭 인물이 되는 것이다.
인물 시각 화자는 자신의 위치와 능력에 대해 '나는 바람이 되어 먼지보다 가벼운 질량으로 존재하기도 했고, 아무 곳에서나 날아온 홀씨처럼 오래 한 자리를 지키기도 했으므로 그 기적 같은 일을 눈치 채는 사람은 없었다'(42쪽)고 말하고 '나는 그 모든 것의 사이에서 그 모든 것을 볼 따름이다. 나에게는 그 방향을 바꿀 힘이 없다'(43쪽)고 말한다. 대부분의 작가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인물 시각 서술을 불편하게 사용하는 것. 거기에 김선재 소설의 특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