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 덕에 사치(Saatchi)에서 전시한다고요? 그럴 리가요, 호호!"
동양화가 오명희(61·수원대 교수)가 열여섯 살 소녀처럼 들떴다. 10일 영국 런던 사치갤러리에서 개막하는 전시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며 웃었다. 그녀의 사위는 축구 스타 박지성(36). SBS 아나운서였던 둘째 딸 김민지(32)씨와 결혼해 런던에 살고 있다.
'박지성 장모'로 세간에 알려졌지만, 오명희는 '스카프를 그리는 화가'로 1990년대 화단에서 주목받은 중견 작가다. 전통 화조화의 맥을 이으면서도 스카프라는 소재를 더해 초현실주의 분위기 물씬한 독특한 조형 세계를 구축해왔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들녘과 수풀, 꽃밭에 날리거나 내려앉은 화사한 보자기는 현실의 풍경이 아닌 꿈속의 정경처럼 신비롭고 아련하다"고 평했다. 사치갤러리에서 18일까지 열리는 오명희 초대전 'Metamorphosis; A Journey of Transformation(탈바꿈; 변화의 여행)'은 스카프 연작을 포함해 자개, 금박, 3D 영상 등 100호 이상 채색화 대작 3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꽃잎 한 장, 새의 깃털 하나까지 세밀하게 그리고 칠한 작품 도록을 보고 사치 측은 전시실을 두 개로 확장했다.
사치가 처음 오명희에 관심을 보인 건 2012년이다. "홍콩 아트페어 기간 중 열린 한 전시에 출품했는데, 외국인 여성 큐레이터가 들어와 제 작품을 열심히 보더라고요. 그러더니 '런던 사치갤러리에 아시아관이 생기는데 당신 그림처럼 디테일이 강한 작품에 관심이 많다'며 명함을 건네주었죠." 본격 만남은 지난해 초 이뤄졌다. "에바, 타티아나 두 명의 큐레이터가 서울 광장동 제 작업실로 찾아와 일주일을 머물며 옛날 작품부터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조사했어요. 저희 집 조상 내역까지 물을 정도로 어찌나 상세히 취재를 하던지(웃음)." 오명희는 "나이 60이 되어서야 제대로 작가 대접을 받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상업적으로 잘 팔리는 작가이긴 했지만, 스스로에게 '내가 아티스트인가?' 던진 질문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하진 못했거든요."
그녀가 즐겨 그리는 스카프는 자신을 의인화한 소재다. 능수버들과 매화, 아름다운 새들로 화폭은 화사하기 그지없지만 그 속엔 예술에 대한 열정과 열패감이 동시에 묻어난다. "미대(세종대) 나와 결혼하고 아이 셋 낳아 키우면서도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어요. 집안일 마쳐놓고 그림을 그리다가 남편 퇴근해 들어오기 직전에 감쪽같이 치워두곤 했죠. 다 버리고 그림에만 매달리는 사람들 사이에 서면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고요. 뼈대 없이 살만 찐 느낌이랄까. 그래서 밥만 먹고 나면 고구마 장수처럼 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작업실로 달려갔습니다."
10일 전시 개막식엔 딸 내외도 온다고 했다. 사위 박지성의 실제 모습은 어떠냐고 묻자 "무뚝뚝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러블리' 그 자체!"라며 활짝 웃었다. "집이랑 각시밖에 몰라요. 운동선수였나 싶게 집안일도 잘 거들고 기저귀도 잘 갈고요. 덜렁거리는 딸을 침착하고 꼼꼼한 사위가 늘 챙기죠." 박지성 부부의 둘째 임신 소식도 전했다. "큰 손녀(연우)는 제 아빠를 빼닮았는데 둘째는 눈이 예쁜 우리 딸을 닮았으면 좋겠어요.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