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자 이내의 자기소개서 준비해 주시고 내일 간단히 인상 보고 업무능력 알아볼 거고, 서류·면접 통과하면 2차로 인성면접 추가로 봅니다."
최근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공고 모집에 지원했던 20대 지원자가 편의점주에게 받은 문자 내용이다.
이 지원자가 공개한 문자를 보면 편의점주는 사진이 붙은 이력서·주민등록등본·통장 사본 등 각종 서류와 함께 지원 동기·향후 계획·기존 아르바이트 경력을 기술한 1000자 이내의 자기소개서를 요구했다. 또한 “지원자가 많아서 서류와 면접을 통과하면 2차로 인성면접을 추가로 보겠다”며 “몇 달 하고 그만둘 거면 안 와도 된다. 가족처럼 성실하게 일할 분만 받는다”고 했다. 이 문자는 온라인 상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며 큰 논란이 일었다.
기나긴 구직 기간을 견디다 못한 구직자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구하려 하지만, 이런 일자리조차 ‘대기업급’의 복잡한 채용절차를 겪거나 ‘고(高)스펙’을 요구하고 있어 취업준비생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편의점 알바도 1000자 자소서·인성면접 필수?
대학생 A(23)씨는 최근 한 카페 아르바이트 자리 면접을 보던 도중 “명문대생이 아니면 좀 그렇다”는 말을 들었다. 카페 주인이 “서연고(서울대·연세대·고려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서한성(서강대·한양대·성균관대)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A씨는 “단순히 청소를 하고 테이블을 닦는 데 대체 학벌이 무슨 상관인가. 너무 화가 나서 면접을 보던 도중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말했다.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드는데 구직자는 넘쳐나면서 고용주들이 단순 알바조차 ‘경력직’을 선호하는 현상도 뚜렷하다. 알바몬이 최근 고용주 21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4.5%의 고용주가 ‘알바 모집 시 경력이 있는 지원자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주된 이유로 ‘교육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63.3%)이라고 답했다. 한 편의점주는 “한 명을 뽑는데 수십 명이 지원하는 상황인데, 굳이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신입을 뽑을 이유는 없다. 이왕이면 경력자를 뽑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대학생 B(20)씨는 “처음 카페 알바 면접을 보러 갔는데 다른 지원자들은 ‘카페 알바 경험이 있다’면서 ‘자긴 따로 교육이 필요없으니 뽑아달라’고 하더라”며 “생활비에 보탬이 되려고 했지만 심지어 알바조차 경력직을 뽑는 상황에 어디서 돈을 벌고 어디서 경험을 쌓아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넘쳐나는 구직 청년, 쏟아지는 은퇴자들
점주들, "경력자만 골라 뽑는 게 당연"
통계청이 지난 7월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올 5월 기준 15~29세 청년 중 이미 학교를 졸업했거나 중퇴한 미취업자가 147만명. 이들 중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는 사람은 19만명에 달한다. ‘취업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57만명도 짬짬이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에 나서기 때문에 단순 아르바이트 일자리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한 전문가는 청년 취업난에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은퇴 후 알바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이런 현상이 더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C(56)씨는 “한 기업에서 30년간 일하다가 은퇴했는데 치킨집 같은 자영업에 손을 대자니 퇴직금을 날릴까 두려웠다”며 “그래서 조금이지만 꾸준히 벌 수 있는 편의점 알바를 선택하게 됐다. 30년간 영업 및 재무 담당을 맡아왔던 노하우 덕분에 점주가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 교수는 “일자리가 없어 알바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젊은 세대뿐 아니라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하면서 알바 시장에 인력이 쏟아지고 있다”며 “고용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넓어지면서, 더욱 까다로운 선발 조건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노동조합은 “고용주들이 엄격한 잣대로 사람을 뽑는 만큼, 그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제대로 된 대접을 해야 한다”며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들이 겪는 애로사항을 고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창구도 필요하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