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의 돼지 농장 주인은 이제 뭘 하려는지 궁금하군요."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대전이 발발하자,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얀 자빈스키'(요한 헬덴베르그)와 '안토니나'(제시카 차스테인) 부부는 동물원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동물원은 졸지에 독일 병사들을 먹여 살릴 식용 돼지 농장으로 전락하고, 나치 장교들은 이들 부부를 차갑게 비웃는다. 하지만 부부는 동물들을 지키고 돌보던 이곳을 새롭게 활용할 묘안을 짜낸다. 나치에 핍박받던 유대인들을 숨겨주는 은신처로 만든 것이다.

영화‘주키퍼스 와이프’에서 유대인들을 숨겨주는 폴란드 동물원장 부인‘안토니나’역의 배우 제시카 차스테인.

12일 개봉하는 영화 '주키퍼스 와이프(The Zookeeper's Wife·감독 니키 카로)'는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300여 명의 목숨을 구했던 자빈스키 부부의 실화(實 話)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남편 얀(1897 ~1974)은 2차 대전 때 폴란드 저항군에 가담했다가 부상을 입고서 독일군 포로로 붙잡히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전후(戰後) 예루살렘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정의로운 세계 시민' 훈장을 받았다.

폴란드판 '쉰들러 리스트'인 이 실화는 미국의 시인이자 박물학자인 다이앤 애커먼이 2007년 동명(同名) 논픽션으로 출간했다. 국내에서도 영화 개봉에 맞춰 애커먼의 논픽션이 10년 만에 재출간됐다. 폴란드 근현대사를 전공한 임지현 서강대 교수는 "얀 자빈스키는 민족주의적 레지스탕스 경력 때문에 정작 폴란드 공산화 이후인 1951년에는 동물원장직을 잃고 바르샤바 사범대에서 동물학을 강의하기도 했다"면서 "폴란드에서 유대인 구출에 앞장섰던 양심적 지식인들은 반(反)유대적 폴란드인들의 적대감을 두려워해서 그 사실을 숨기고 살았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로 다크 서티'와 '미스 슬로운' 등으로 국내에도 팬이 적지 않은 차스테인이 이번 영화에서 주연과 제작을 모두 맡았다. 그는 동물원장 부인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뉴욕 동물원에서 조련사 체험을 했다. 피아노 연주를 통해 지하에 숨은 유대인들에게 독일군이 온다는 신호를 보내는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실제 피아노 레슨도 받았다.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작품들에서 진가를 보였던 차스테인은 이번 영화에서는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는 외유내강의 모습을 선보인다. 동물과 인간들이 자유롭게 어우러지는 영화 초반 장면들도 인상적이다.

영화는 극소수의 나치 장교를 제외하면 등장인물들의 선의(善意)를 줄곧 강조한다. 이 때문에 극적 갈등이나 긴장감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하지만 발각의 위기 속에서도 관용의 정신을 잃지 않는 자빈스키 부부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실화의 감동이 영화적 재미를 앞서는 경우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