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흡연자가 옷이나 머리카락 등에 담배 연기를 묻힌 채 귀가하면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29일 본지는 국립암센터 이도훈 진단검사의학과장 연구팀에 의뢰해 흡연자 세 명과 그들의 가족 머리카락에 든 니코틴 함량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3차 흡연' 영향을 측정해 보았다. 그 결과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는 가족의 머리카락에서도 미량이지만 니코틴이 검출됐다. 3차 흡연 피해가 있는 것이다.
◇아기에게 '강제 흡연'
3차 흡연은 '2차 흡연'처럼 간접흡연의 한 종류다. 흡연자가 내뿜는 담배 연기를 마시는 2차 흡연과는 달리 담배 연기에 노출되지 않더라도 독성 물질을 흡입하는 현상을 뜻한다. 특히 니코틴은 섬유 소재에 잘 달라붙어 옷·머리카락 등에 묻었다가 집까지 오염물질을 옮기게 된다. 담배 연기는 250가지 유해물질과 50가지 발암물질을 포함(세계보건기구·WHO 발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해물질이 흡연자 몸에서 나와 벽·가구·먼지와 섞여 결과적으로 식구들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 3차 흡연 폐해다.
3차 흡연 측정을 위해 본지는 흡연자와 가족들 머리카락을 열 가닥씩 모아 시액(수산화나트륨 수용액)에 녹인 뒤 이 용액을 질량 분석기에 넣어 니코틴이 얼마나 들었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담배를 자주 피우는 흡연자일수록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실험 참여자들은 집에서는 베란다에서조차 담배를 피우지 않아 2차 간접흡연의 영향은 없었다.
한 갑 피우는 흡연자 A씨 가족들 머리카락 니코틴 농도는 머리카락 1㎎당 0.12~0.17ng(나노그램·10억분의 1그램) 수준으로 하루 반 갑씩 피우는 B씨 가족(0.07~0.13ng/㎎), C씨 가족(0.03~ 0.15ng/㎎)보다 전반적으로 높았다. 이 세 흡연자는 귀가 전에 양치질하거나 옷을 터는 등 담배 냄새를 털어내기 위해 비교적 관리를 잘했지만 그래도 가족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성규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는 "담배를 자주 피우는 흡연자 가족일수록 '3차 흡연' 위험이 더 커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유아가 특히 위험
흡연자 가족이 3차 흡연에 쉽게 노출되는 것은 독성 물질이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환경보건국에 따르면 니코틴이 공기와 결합하면 3주가 지나도 40%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흡연자가 바로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유해물질을 남겨 피해를 준다는 뜻이다.
특히 어린아이는 3차 흡연에 더 취약하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3차 흡연이 체중과 면역 체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동물 실험에서 3차 흡연은 체중 감소나 알레르기·아토피를 유발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강혜련 서울대 의대 교수가 6~11세 어린이 3만158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3차 흡연에 노출된 아이는 부모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아이보다 야간 기침 20%, 만성 기침 18%, 발작적 연속 기침을 20%가량 더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아직 3차 흡연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3차 흡연 노출 실태 기초 조사 연구'를 진행한 연세대 연구팀은 "3차 흡연의 건강 유해성에 대해 확증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질환이 부족하고, 아직 관련 연구도 부족하다"고 밝혔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지원센터장은 "3차 흡연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발암물질을 전파하는 행위"라며 "완전한 금연만이 3차 흡연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3차 흡연(thirdhand smoke)
흡연자의 몸이나 옷, 벽, 가구 등에 흡착된 담배의 독성물질에 장기간에 걸쳐 노출되는 현상. 흡연자가 피우는 담배 연기에 간접적으로 노출되는 '2차 흡연'(secondhand smoke)과 함께 간접흡연의 한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