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나왔네! 이제 물속에 들어가서 찍자!"

지난달 중순 밤 9시 일본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뉴오타니호텔 야외 수영장. 중앙에 설치된 야자수 앞에서 셀카를 찍던 기모토 마유(여·22)씨가 수영장에 온 지 30분 만에 물속에 들어갔다. 가로 20m, 세로 30m 크기의 풀 안에 있는 여성 고객 30여 명은 대부분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기 바빴다. 마유씨는 "화장과 머리가 망가질까 봐 수영은 안 한다"며 "오샤레('멋쟁이'의 일본말) 같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면 반응이 굉장하다"고 했다.

지난달 중순 도쿄 뉴오타니호텔 수영장을 찾은 일본 젊은이들이 ‘셀카’를 찍고 있다.

날이 저물면 영업을 시작하는 '나이트 풀(night pool)'이 도쿄를 중심으로 유행 중이다. 고급 호텔과 유원지들이 운영하는 '밤의 수영장'으로 20~30대 여성들이 몰린다. 입장료가 1만엔(약 10만원)이 넘지만 이날만 도쿄 젊은이 200명이 이 호텔 나이트 풀을 다녀갔다. 평일 퇴근길 여성과 주말에 럭셔리한 분위기를 즐기려는 고객을 사로잡은 도심 속 나이트 풀이 도쿄 인근에만 20여 군데에 달한다.

나이트 풀은 2001년 도쿄에 처음 생겼다. 주로 투숙객들이 이용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셜미디어가 확산하면서 2015년쯤부터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7월 영업을 시작해 9월 말까지 영업을 하는데, 한여름엔 입장까지 2~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회사원 오가타 유카(여·25)씨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면, 기다리는 건 얼마든지"라고 했다.

다짜고짜 물에 '풍덩' 뛰어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선(先) 사진, 후(後) 물놀이'가 불문율이다. 물놀이는 아예 제쳐놓고 사진만 찍다 가는 고객도 흔하다. 아예 '사진 촬영'에 초점을 맞춘 나이트 풀도 있다. 도쿄 프린스호텔 수영장은 올여름 일본 유명 여성잡지사와 손잡고 수영장 곳곳을 '화보 촬영지'로 만들었다. 화보 촬영용 LED 조명과 소품들을 배치했다. 도쿄타워를 뒤로 놓고 찍는 포토존이 가장 인기가 좋다. 올해 손님이 작년의 3배 넘게 늘었다. 프린스호텔 측은 "고객 남녀 비율은 '1대9' 수준"이라며 "화려한 조명과 물을 배경으로 사진 찍으려는 20~30 여성 고객이 대다수"라고 했다.

일본 여행잡지 잘란(Jalan)이 지난 3월 18~29세 일본 여성 121명에게 물었더니, 응답자의 44%가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 여가 활동을 한다"고 답했다. 일본생산성본부 시무라 다케노리 선임연구원은 "젊은 여성들이 참여하는 이런 새로운 여가 활동 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일하는 방식 개혁'도 나이트 풀 유행에 영향을 끼쳤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분석했다. 초과 근무를 줄이고 휴가를 챙기는 분위기 속에서 젊은이들이 나이트 풀을 찾는다는 것이다. 호텔에는 고객층을 넓힐 절호의 기회가 된다. 한 호텔 관계자는 "호텔에 몰려온 젊은 여성들이 새로운 수입원이 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