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5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국민청원 1호 답변으로 ‘소년법 개정 청원’에 답했다. “법 개정보다는 예방과 교화에 초점을 맞춰 나가는게 바람직하다”는 내용이었다. 이달 초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등 10대 청소년 범죄가 잇따르자 지난 3일 한 시민이 ‘소년법 폐지 청원’을 올렸고, 약 39만명이 서명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법 폐지보다는) 소년법의 10가지 보호처분을 활성화하는 게 더 좋다”고 했다.
전국 각지에 있는 '소년원'은 조 수석이 말한 범죄예방과 교화에 초점을 맞추는 교육기관이다.
만 10세~19세 미만 소년이 범죄를 저지르면 정도가 중할 경우 일반 형사처분을 받지만 그렇지 않다면 가정법원 등에서 소년보호처분이 내려진다. 소년원 송치는 비교적 비행 정도가 중한 아이들을 일정 기간 시설에 수용해 기술을 가르치거나 학과과정을 이수하게해 교화(敎化)시키는 처분이다. 과연 이곳에서 아이들은 거듭날 수 있을까. '교육기관'의 위치에 맞게 '고봉 중고등학교'로 이름이 붙여진 서울소년원을 찾았다.
서울소년원 복도에서는 커피 향기가 난다. 10여명의 소년원생들이 바리스타 과정을 이수하는 ‘바리스타반’은 늘 분주하다. 한쪽에서는 커피 원두를 볶는 ‘로스팅’을, 다른 한 쪽에서는 커피를 추출하는 과정을 배운다. 우유거품을 내 커피를 예쁘게 장식하는 ‘라떼 아트’도 과정 중 하나. 윤두남 교사는 “시중 학원에서는 과정별로 나뉘어 돈을 받지만, 여기서는 한번에 다 배울 수 있다”고 했다. 한국바리스타협회와 연계해 실제 자격시험도 실시하고 있으며 지난해 23명이 통과했다. 그는 “아이들이 ‘먹고 살 일’이어서 바리스타 시험 통과 기준도 바깥보다 더 까다롭게 했다”고 했다. 두영(19세, 가명)이는 서울가정법원 주최 바리스타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그는 면회오는 부모님들을 위한 소년원 입구 카페에서 자원봉사도 한다.
커피향기를 뒤로 하고 걷다 보면 ‘밴드실’을 만나게 된다. 방음장치가 된 연습실 네 개에 드럼, 피아노, 기타 등 악기가 구비돼 있다. 비보이, 뮤지컬, 축구부 등 다양한 취미활동 과정도 있다고 한다. 직업훈련 외 취미활동들은 많은 부분 기업 지원을 받아 이뤄진다.
일부는 “범죄소년들을 이렇게까지 우대할 필요가 있냐”고 비판한다. 송화숙 서울소년원 원장은 “보통아이들과 다른 만큼, 다르게 대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전체 수용인원 중 30%가 정신과 약을 투약하고 폐쇄병동에 입원했다 온 아이들도 있다. 실제로 정신과 의사 외래왕진이 있는 이 날도 32명이 상담을 위해 대기중이었다. 증상은 ADHD, 분노조절 장애 등 다양하다. 송 원장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양육환경 탓이 크다. 태어나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려져 부모도 모르는 아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빠의 가정폭력을 겪고, 무속인 엄마를 따라 초등학교 때만 7번 전학을 간 경우도 있었다. 한참 사회성을 키울 나이에 비정상적인 양육환경이 악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가 소년비행이다.
소년원 환경이 아무리 좋더라도 본질은 ‘갇힌 생활’이다. 부모가 돌아가시거나, 대학입학 원서를 내는 경우 등이 아니면 소년원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오전 6시 기상, 밤 9시 취침에 매일 7교시 수업을 하고 그 외에는 인성교육, 체육활동 등으로 빡빡하게 채워진다. 교사들이 아이들의 일상을 24시간 관리한다.
배움의 공간은 쾌적해 보여도 생활공간은 늘 과밀상태다. 정원은 150명이지만 현재 255명이 재원중이다. 정원의 70%를 초과했다. 전국 11개 소년원이 평균 20% 정원초과상태이지만 서울소년원은 유독 심하다. 규모가 크고 다양한 과정을 운영하다 보니 사람이 몰린다고 한다. 같은 직업훈련이나 학사과정을 거치는 원생들이 함께 방을 쓰는데 43㎡(약 13평)넓이에 12~15명이 생활한다. 인원이 많은 ‘고교과정’은 18명씩 들어가 있다. 13평을 절반으로 나눠 양쪽에 9명씩 잔다.
소년원 과밀상태는 2005년부터 추진된 소년원 통폐합을 겪으며 더 심해졌다. 2002년 1만명의 소년범이 전국 14곳의 소년원에 수용돼 있었다. 그런데 수용 청소년 수가 점차 줄어들어 2006년에는 6000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검찰에서 기소를 하지 않거나 보호관찰과 같은 사회 내(內)처분을 내리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정부는 기관통폐합을 추진했고 현재 소년원학교 4곳과 분류심사원 4곳이 사라졌다. 그런데 2006년을 기점으로 소년범죄가 늘어났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소년범죄 인원은 2006년 6만 9221명, 2007년 8만 8104명에서 2008년에는 무려 13만 4992명까지 급증했다. 이후 완만한 증감을 거쳐 2015년에는 6만 5924명까지 줄었지만, 문제는 인권의식이 높아지면서 수용기준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1인당 수용 면적 기준이 10년전에는 4.0㎡였지만 현재는 6.6㎡까지 넓어졌다. 아이들 체격도 커지다보니 1인당 면적이 넓어져도 늘 북적거린다. 소년원 관계자는 “통·폐합은 이런 사회변화를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했다. 과밀상태의 문제는 아이들의 불편에 그치지 않는다. 판사들도 ‘10호처분’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소년원에 수용돼야 할 아이들이 보호관찰 등 사회내 처분을 받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재범으로 이어는 일이 잦다.
소년범죄의 대안으로 일각에서는 10호처분의 상한 기간을 없애 ‘교화될 때까지’수용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소년원의 교정 효과가 좋고 수용여건이 일반 교도소나 소년교도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 원장은 “장기수용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흉악범죄자까지 소년원에서 품어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교도소에서 벌 받을 아이들은 받아야 한다. 소년원에는 교정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이 와야 한다. 성장기이니만큼 3년 넘게 사회와 분리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송 원장은 “사회가 각박해지는 만큼 아이들이 거칠어지는 것”이라며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최소한 한번의 기회는 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