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은 부자 실업가의 딸로 태어났다. 애초 가난이란 걸 모르고 자랐다. 명문 소르본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업에 열정이 없어 카페에서 담배나 피우며 빈둥거렸다.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퇴했다. 파리의 한 아파트에 처박혀 첫 장편 '슬픔이여 안녕'을 두 달 만에 써냈다. 남프랑스 해변 별장에서 펼쳐지는 시니컬한 18세 소녀와 아버지, 아버지의 연인 사이에 벌어지는 질투와 사랑, 슬픔의 나른함과 달콤함을 담았다. 1954년, 발랄하고 재기 넘치는 19세 작가의 등장과 당시로는 파격인 스캔들을 담은 소설로 프랑스 보수 사회는 두 번이나 화들짝 놀랐다. 사강의 첫 소설은 대중의 호기심에 불을 지피며 1년 만에 33만 부가 팔렸다.
사강은 천재 작가라는 칭송을 받고 엄청난 인세를 벌어들이자 술과 파티로 이어지는 사교생활에 빠져들었다. 별장과 재규어 스포츠카를 샀다. 1957년 스포츠카를 몰다가 센강 강변도로에서 절벽으로 굴렀다. '사강, 교통사고로 죽다'라는 뉴스가 떴으나 기적으로 살아났다. 사강은 그 뒤 여러 번 자동차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1958년 스무 살 연상인 출판사 편집인 가이 슈웰리에게 구애를 펼쳐 결혼했다. 사교 모임을 끊고 집에 들어앉아 소설을 썼다. 그러나 2년 만에 이혼했다. 1962년 미국 출신 패션 디자이너 밥 웨스트와 재혼했지만 남자의 방종함에 질려 다시 이혼했다.
사강은 자동차광이자 스피드광이었다. 스포츠카의 액셀러레이터를 맨발로 밟으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걸 좋아했다. 자동차가 고장 나면 길에 버리고 새 자동차를 샀다. 사강은 자동차 말고도 독서, 위스키, 재즈, 모차르트, 마약, 도박을 사랑했다. 거액의 카지노 빚으로 파산하고도 "도박은 삶의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신적인 열정"이라고 했다. 마약 복용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사강의 '자기 파멸권' 주장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으나 법원은 그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마흔 이후 사강은 급격하게 쇠락했다. 항구 도시 옹플뢰르에서 심장과 폐질환으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