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위기를 만든 본질적 이유는 비평 안에 있다."

사단법인 문학실험실이 22일 서울 예술가의집에서 '문학 비평의 반성'을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홍정선(64) 인하대 교수는 먼저 "작품을 적당히 읽어버리는 안이한 태도, 자기 마음대로 읽어버리는 오만한 태도, (작품을) 정치적 수사로 만드는 이해관계적 태도"를 짚었다. 특히 젊은 비평가들이 "이곳저곳에 지나치게 해외 석학의 글을 남용"하고 "비평가의 생각을 작품에 과도하게 덮어씌우는 경우"를 공격했다. "비평가가 전면에 내세워야 할 얼굴은 작품이지 비평가 자신의 얼굴이 아니다."

22일 열린 포럼에 참석한 강동호·양윤의·김영찬·홍정선 평론가(왼쪽부터).

이 같은 문학 비평의 외국 이론 과잉 현상에 대해 강동호(33) 한신대 교수는 일본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이 촉발한 '문학의 종언' 논란에서 원인을 찾았다. "문학의 정치적 역할은 끝났다"고 주장하는 일련의 논조를 반박하기 위해 비평가들이 여러 이론을 주워섬긴 것이 2000년대 여러 층위를 거쳐 지금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덧붙여 비평가들이 지니기 시작한 "비평이 작품의 미적 가치를 판단하는 '사후적 글쓰기'에 그칠 수 없다는 인식"과 "비평 또한 독립적인 미학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는 욕망"을 또 다른 이유로 꼽았다. 강 교수는 '비평 자체의 작품화'를 위해서는 "비평 스스로 타인의 비평을 적극적으로 읽고 갱신하려는 의지를 선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문학실험실이 낸 반연간지 '쓺'은 '문학성과 정치성'을 특집으로 삼고 정과리(59) 연세대 교수의 글 '점점 더 정치의 시녀가 돼가는 문학을 근심하며'를 실었다. 요지는 "오늘날 문학이 정치 담론에 자발적으로 통합돼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문학의 언어가 점점 도구화되고 사색의 깊이를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정치적 흥분에 휩쓸리는 문학 언어의 일방통행을 경계하며 "타인의 언어가 드나드는 수용체"이자 "다중언어의 장소"로서의 문학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