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네 살 된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에 돌아온 권순욱씨(39)는 집에 오자마자 주방에 수북하게 쌓인 젖병들을 냄비에 물을 받아 끓여서 소독했다. 소독이 끝나자마자 권씨는 세탁기에서 돌린 한 무더기 빨래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빨래를 널었다. 다시 거실로 내려와 한숨 돌리려는 찰나 두 달 된 둘째 분유를 먹어야 할 것 같다는 아내 고우리씨(33) 말에 분유를 타서 둘째에게 먹였다.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골프·레저 플로어 팀장으로 근무 중인 권씨는 지난 1일 부터 육아 휴직에 들어갔다. 맞벌이에 둘째 아이가 태어났지만 그에겐 첫 번째 육아 휴직인 셈이다. 회사에서 의무적으로 남편들도 육아휴직을 하도록 해서 한달 이상 쉬게 된 것이다. 부인도 마찬가지로 육아휴직 중이다.
"애들 엄마가 그동안 혼자 다하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아내가 다 혼자 하던 것들이죠. 한 달 정도 쉬면서 같이 하는 거죠"
둘째에게 분유를 먹이고 나니 점심시간이다. 남편이 후다닥 먹는 동안 아내가 둘째를 보고 밥을 다 먹은 후엔 다시 교대했다. 점심은 보통 집에 있는 간단한 반찬으로 식사하고 애를 재운 저녁에 국이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을 먹는다. 오전엔 1시간 정도, 오후엔 3시간 반 정도. 그 시간 동안 집안일과 아기를 보고 잠깐 낮잠을 잘 수 있다. 하지만 아기 분유도 2-3시간마다 먹이면 금방 첫째 데리러 갈 시간이 온다.
"첫째한테 미안하지만 애가 조금 더 어린이집에 있어주면 해요. 둘째 보는데 더 수월하니깐" 그만큼 육아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하지만 살면서 처음으로 애들이랑 오롯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만족해요"
다른 샐러리맨들처럼 권씨도 육아휴직 전 고민을 했다. 내년에 승진 차수에 들어가고 인사 고가 평가도 신경을 써야하는데 한 달 넘게 자리를 비운다는 것이 찜찜했다. 회사 입장 보다 자신이 육아의 부담을 얼마나 져야 할지도 불안했다고 한다. 부담과 불안으로 시작한 그의 첫 육아휴직은 일주일이 지나면서 능숙한 살림꾼의 모습을 보였다. “솔직히 애 보면서 몸이 힘들긴 하죠. 둘째가 이제 칠십 여일 됐는데 잠들 때 까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해서 허리도 무지 아파요”
권씨는 이달 육아휴직급여가 오르며 혜택을 받게 됐다. 육아휴직 급여는 지난 9월 1일부터 통상임금의 80%(상한 150만원, 하한 70만원)로 기존의 40%(상한 100만원, 하한 50만원)에서 인상됐다. 회사에서 통상 임금의 100%를 보전해주지만 상여금 등의 수당이 빠지게 되니 실제 수령액은 일하며 받는 것보다는 물론 적다. 권씨는 “맞벌이하면서 애 키우기도 이렇게 힘든데 정말 맞벌이가 아닌 외벌이나 벌이가 좀 적은 사람들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요?”라고 했다.
올해로 4년차 주부인 황모(34)씨는 11개월째 육아휴직중이다. 황씨도 수입이 줄더라도 남편과 함께 육아휴직을 하고 싶지만 상황이 어렵다고 했다. 남편이 다니는 회사는 육아 휴직을 할 경우 인사상의 불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휴직 기간이 한 달여 남은 황씨는 편히 아이를 맡기고 일할 수 있는 어린이집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남성들의 육아휴직 비율은 아직 미미하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 전체 육아휴직자인 8만 9834명 가운데 8.5%인 7,616명의 남성들만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저출산 쇼크로 인한 인구절벽을 마주하는 현재 부모의 공동육아를 통해 여성들의 육아 부담을 줄이면서 출산율을 높이고, 정부의 정책 및 예산은 부모들의 육아 현실에 맞게 집행되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형주 기자 foru82@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