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북쪽 소도시 페탈루마에 있는 '안단테 데어리(Andante Dairy)'는 미국 최고 요리사들이 쓰고 싶어서 안달하는 치즈를 생산하는 공방이다. 프랑스의 어떤 레스토랑보다 더 훌륭한 프랑스 요리를 한다고 평가받는 '프렌치 론드리', 올해 세계 외식 전문가들이 뽑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 1위에 오른 뉴욕 '일레븐 매디슨 파크', 동서양의 맛을 절묘하게 결합한 '장조지' 등 미국을 대표하는 레스토랑에서 치즈를 받기 위해 줄을 선다. 이 공방의 설립자 겸 치즈 장인은 김소영(50)씨다.
그녀는 원래 공학도 출신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공과대에서 생명공학으로 학사를, 카이스트에서 생명공학으로 석사를 딴 뒤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1993년 미국 보스턴으로 건너갔다. 음악 애호가였던 그는 이츠하크 펄먼 연주회에서 음향엔지니어인 남편을 만나 1994년 결혼했다.
그해 남편과 프랑스로 여행 간 게 '화근'이었다. 프랑스에서 맛본 천연 치즈는 한국과 미국에서 먹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치즈는 단순함이 빚어내는 다양함의 세계죠. 우유에 소금과 효소, 종균을 섞는 것만으로 수백 가지 치즈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두 손을 써서 일한다는 점도 좋았어요."
그는 치즈의 매력에 무섭게 빠져들었다.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 낙농학 프로그램에서 2년 동안 치즈를 공부했다. 그리고 1999년 안단테를 설립했다. "새벽 4시에 우유가 배달되기 때문에 그 전에 페탈루마 공방에 도착해야 하죠. 우유를 받아서 다시 1시간 떨어진 세인트 헬레나의 공방에 가서 치즈를 만듭니다. 저녁이면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왕복 160㎞ 강행군을 매일 반복했어요." 손가락이 일곱 번 부러지고, 힘줄이 끊어졌는데도 손가락을 동여맨 채 6개월이나 작업하기도 했다.
천신만고 끝에 처음 만든 치즈가 '녹턴'이다. 그는 모든 치즈에 '피콜로' '아다지오' '론도' 같은 음악 용어를 붙인다. 녹턴을 처음 알아봐준 이가 토머스 켈러였다. 켈러는 미국 요리사로는 처음으로 레스토랑 2곳에서 동시에 미쉐린 별 3개를 받은 전설적인 요리 명장(名匠). 켈러는 치즈를 맛보더니 "만드는 대로 내 식당으로 가져오라"고 했다. 그가 만든 치즈에 극찬이 쏟아졌다.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2008년 안단테의 '피가로'를 그해 10대 치즈로 꼽으면서 '1개월도 채 숙성시키지 않았음에도 풍부한 향과 부드럽고 탄력 있는 식감을 가진 작은 예술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음식전문지 '사버(Saveur)'는 김씨를 '궁극의 장인'이라고 치켜세웠다.
'본고장 유럽에 버금가는 치즈'로 인정받자 치즈를 달라는 요청이 쏟아졌다. 혼자서 전 생산과정을 관리하는 안단테에서 일주일에 생산하는 치즈는 지금도 100여 ㎏에 불과하다. 대기 리스트는 점점 길어졌다. "보통 5~6년 기다려야 해요. 셰프들은 치즈를 받으려고 저를 식사에 초대해요. 저는 셰프를 직접 만나보고 요리를 맛본 다음 납품을 결정해요. 아무리 유명해도 셰프와 그의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치즈를 주지 않아요."
김씨는 지난해부터 조선호텔 레스토랑 '나인스게이트'의 치즈 리스트 선정과 직원 교육을 맡는 등 한국에서도 일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낙농 목장에 가보니 폐기물 악취가 너무 심했어요. 주변 주민들의 불편과 고통이 심각하고, 민원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샌프란시스코와 주변 지역에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직접 체험했어요. 제 경험을 한국에 전해주는 것이 저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