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13일 가장 화제가 된 이슈는 '240번 버스 사건'이었다. 처음엔 '어린아이만 내린 상태에서 버스가 출발하자 엄마가 문을 열어 달라고 고함을 쳤는데도 버스 기사가 운행을 계속했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버스 기사에 대한 공분이 일었다. 이후 버스 내부 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버스 기사에게 별다른 잘못이 없다는 반박이 나왔다. 그러자 인터넷 여론이 순식간에 바뀌어, 애초 사건 관련 글을 올린 사람에 대한 비판이 폭주했다. 사건의 진실과 별도로 이번 일은 최근 인터넷 여론이 형성되고 유통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오면 경쟁적으로 퍼 나르고, 여론의 쏠림 현상이 발생한다. 거기에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은 없다.

사실 확인 없이 퍼 나르는 글들

'240번 버스 사건' 글이 처음 올라온 것은 지난 11일 오후 7시쯤 포털 사이트 '다음'의 성형 관련 카페였다. 회원 수는 10만명이다. 3시간 남짓 지나, 국내 최대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에 관련 글이 공유됐다. 제목은 '이거 봤냐 개빡쳐. 건대역에서 일어난 거래'였다. 그날 밤 디씨인사이드에서 화제가 됐고, 밤새 보배드림(자동차 커뮤니티), 82쿡(요리 정보), 엠엘비파크(야구), 뽐뿌(휴대전화) 등 회원이 수백만명인 커뮤니티에도 관련 글들이 올라왔다.

12일 아침부터 이 커뮤니티들을 중심으로 버스 기사에 대한 비난이 본격적으로 터져나왔다. '내리기도 전에 문 닫는 기사 새X들 널렸다' '240번 버스 기사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는 글들이 게시판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여론은 '서울 240번 버스기사의 어린이 유기'로 정리돼 갔다. 인터넷 여론이 들끓자, 12일 오전 10시쯤부터 통신사와 인터넷 언론들이 이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사실 확인이나 당사자들의 반론은 기사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날 정오쯤에는 주요 뉴스로 인터넷 사이트에 올랐다.

여론의 흐름은 12일 밤부터 바뀌었다. 이날 오후 버스 기사 딸이 해명글을 올렸다. 이번엔 포털 사이트 '네이트' 게시판인 '네이트 판'이었다. 방송 뉴스에 버스 내부 CCTV가 공개됐다. 비로소 사실 확인이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서울시는 "버스 기사에겐 별다른 잘못이 없다"고 했다. 이번엔 "기사가 잘못한 게 아닌 것 같다" "최초 목격자는 기사한테 사과하라"는 글들이 커뮤니티에 쏟아졌다. 사건의 실체와는 무관하게 여론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양극단을 오간 것이다.

10여개 커뮤니티에 휘둘리는 여론

현재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는 거대 커뮤니티는 10개 정도. 보수 성향의 일간베스트, 진보 성향인 오늘의 유머와 딴지일보 자유게시판, 여성 위주 사이트인 네이트판·82쿡, 남성 위주 사이트인 보배드림·엠엘비파크 등이다. 색깔이 뚜렷해 여론이 한편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사이트에는 하루 평균 수백 건의 글이 새로 올라온다. 어떤 사람이나 현상을 비판하는 글이 주로 화제가 되고 '베스트 글'에 오른다. 이상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소재가 자극적일수록 빨리 퍼진다"고 했다. 미국언론연구소(API)가 트위터 10만 건을 분석한 결과, 자극적인 가짜 뉴스의 확산 속도가 이를 바로잡는 뉴스보다 8배나 빨랐다.

검증되지 않은 사건을 올리다 보니 미담(美談)이 조작되는 일도 있다. 지난 6월 치킨 배달원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보배드림 자유게시판에 '눈물 났던 치킨 배달'이라는 제목으로 "장애가 있는 아주머니와 아들이 사는 반지하집에 배달을 갔는데 사정이 딱해 7번째 손님은 무료라고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는 글을 썼다. 이 남성은 배달 영상까지 찍어 올렸다. 당시 치킨 업체는 이 네티즌을 정사원으로 채용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언론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얼마 뒤 영상에 노출된 아주머니는 장애가 없었고 어려운 형편도 아니라는 점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커뮤니티 여론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기도 한다. 최근 학교폭력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소년법 폐지 청원 운동이 일었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 26만여명이 서명하면서 소년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