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제왕'이 일흔 살을 맞는다. 오는 21일 70세 생일을 맞는 스티븐 킹 이야기다. 지금까지 팔려나간 책만 무려 3억5000만부. 장편 54편과 단편 200여 편의 소설, 그리고 '유혹하는 글쓰기' 등 6편의 논픽션이 그가 제출한 작품 리스트다. '스티븐 킹 전작(全作)주의자' 안승환 영화감독이 '왕'이 '이야기의 왕'인 이유를 보내왔다. 전 세계 독자들이 가장 높은 평점을 매긴 '스티븐 킹 베스트 10'과 국내 베스트셀러 10 리스트도 함께 싣는다.

스티븐 킹 단편집

김현우 옮김|576쪽

스탠드

조재형 옮김|전6권

그것

정진영 옮김|전3권

11/22/63

이은선 옮김|전2권

미스터

메르세데스|이은선 옮김|612쪽

소설이 아니라 영화였을 것이다. 아마도 ‘캐리’. 어떤 의미에서든 피가 낭자한 그 영화에서 처음 본 이름이 당시 표기로 스테픈 킹(Stephen King), 한국 성으로 치면 왕씨. 그 이름은 걸핏하면 출몰했다. 주로 비디오로 보았던, 삼류까지는 아니더라도 잘해야 이류 영화들에서. ‘쿠조’, ‘크리스틴’, ‘공포의 묘지’, ‘초인지대’, ‘괴물’… 어쨌든 책 표지에 박힌 이름도 슬슬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그다지 독서욕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신들린 도시’(It), ‘공중그네’(쿠조), ‘빨래집게’(The Dead Zone. ‘죠스’를 ‘아가리’로 번역한 제목 이후 가장 경악스러웠다)… 밑도 끝도 없는 제목인 데다 작가 이름은 여전히 스테픈 킹 혹은, 스테판 킹. 도대체 왕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90년대 초중반까지도 그런 시절이었다. 스티븐 킹을 본인 의사 상관없이 스테픈 킹이라 발음하던 시절. 그러다 출시된 지 한참 후에 역시 비디오로 본 ‘스탠 바이 미’. 어라, 이류가 아니네? 사실은 감동적이었지만, 감독이 영화를 잘 찍었겠지. 게다가 리버 피닉스 형이 주인공이니까. 그래도 원작을 한번 읽어나 볼까? 그리고 나는 회개하였다. 이어지는 ‘미저리’, ‘쇼생크 탈출’, ‘미스트’… 모두 일류에 가까운 영화들이었지만 킹의 소설은 항상 그보다 더 좋았다. 이제 킹을 (경멸의 의미로) 대중작가라느니, 공포작가라느니, 상업작가라고 말하는 불신자들을 보면 측은지심마저 드는 건 아마도 불경했던 내 과거 때문이겠지. 사울이었던 바울이 가장 열렬한 신도가 되었듯이.

일러스트=안병현

킹은 이야기의 제왕으로 불린다. 이야기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간단한 기준이 있다. 1)평범한 사람. 재미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재미없게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재료의 선택. 집을 나서다 머리 잘린 시체를 발견했는데 얼마 뒤 머리가 스멀스멀 자라나기 시작하고, 알고 보니 그것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생명체였으며 정부기관뿐 아니라 영생의 비밀을 노린 백만장자의 하수인들이 추적을…. 이런 이야기는 누가 하든 대충 재미있다. 너무 흔해서 탈이지만. 2)이야기를 못 하는 사람. 저렇듯 재미난 이야기를 해도 듣는 사람은 지루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인다. 3)이야기를 잘하는 사람. 집을 나서는데… 여기까지만 해도 듣는 사람은 눈을 빛내기 시작한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여기 있다. 가령, ‘미저리’의 첫 부분을 보자.

“메인 주 리비어 해변의 모래밭에 불쑥 튀어나와 있던 부러진 말뚝이 떠올랐다.”

교통사고를 당한 주인공이 널브러져 있다. 그런데 부러진 말뚝은 뜬금없이 왜 나왔을까? 답은 네 페이지 뒤에야 나온다.

“고통은 두 개의 말뚝이었고, 마음으로 사실을 받아들이기 오래전부터 그의 일부는 그 부서진 말뚝들이 곧 그의 부서진 두 다리를 의미함을 알고 있었다.”

보통사람이라면 ‘다리가 부러져 아팠다’고 달랑 아홉 글자로 얘기하고 말 것을 네 페이지에 걸쳐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재미있게. 이 정도면 이야기의 제왕을 넘어 가히 ‘구라의 신’이라고 할밖에. 물론 농담이지만 반만 그렇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하지 않나. 그 말씀을 한 존재는 다른 무엇이기에 앞서 이야기꾼이 아니었을까. 이 무정하고 비정한 세계와 삶에 단숨에 의미를 부여해 버릴 만큼 대단한 이야기꾼. 우리가 종교를 믿는 이유와 이야기를 읽는 이유는 다르지 않다.

그런 이야기를 쓰는 비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스티븐 킹의 책 ‘유혹하는 글쓰기’를 펼친 사람은 실망했으리라. 책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나는 그런 이야기가 그냥 막 써져”니까. 다시 읽을 때에야 왜 책의 절반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로 채워져 있는지 알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쓰려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사는 데 필요한 것은 용기다.

“달착지근한 것은 싫다. 고상한 것도 싫다. ‘백설공주와 빌어먹을 일곱 난쟁이’도 싫다. 열세 살 때 내가 원했던 것은 도시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괴물들, 방사능에 오염된 후 바다에서 기어 나와 파도타기 하는 사람들을 잡아먹는 시체들, 그리고 검은 브래지어를 걸치고 몸가짐이 헤픈 여자들이었다.”

싫어하는 것을 싫다고, 좋아하는 것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소년의 용기. 좋아하는 것을 쓸 수 있는 작가로서의 용기. 그 용기가 바로 재능이다. 결국 미국 문학예술계도 이 공포작가, 대중작가, 상업작가에게 전미도서상 평생공로상과 미국예술훈장을 수여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킹은 열세 살 소년으로서 소설을 쓸 것이다. 그런 양반에게 칠순이 뭐 대수겠는가만은, LONG LIVE THE KING!

킹은 공포뿐 아니라 판타지, 스릴러,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60편에 가까운 장편과 200편에 이르는 중단편을 썼다. 그중에서 5권을 뽑는 것은 고문에 가깝지만, ‘쇼생크 탈출’ ‘캐리’ ‘그린 마일’ 등 이미 잘 알려진 작품은 되도록 피하고 다양한 장르와 시기를 아우르려고 했다.

스티븐 킹 단편집 Night Shift(공포·판타지·스릴러): 킹의 단편은 장편만큼, 때로는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단편들을 장편 쓰는 사이사이에 '휴식 삼아' 썼다고 말해 동료 작가들을 좌절시킨다. 영화로도 잘 알려진 '금연 주식회사'와 '옥수수밭의 아이들', '정원사' 등이 포함돼 있다.

스탠드(묵시록): '소설은 어느 정도 볼륨이 있고 등장인물이 많을수록 좋다'고 킹은 말한 적이 있다. 바로 그런 소설.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작이면서 지구 종말을 다룬 이른바 포스트 묵시록 장르의 선구적 작품 중 하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킹이 다루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이야기다.

그것(공포): 사실 최종 보스 괴물이야 어떻든 상관없다. 그리운 살인광대 페니와이즈와 그에 맞서도록 운명 지어진 아이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장편 추천작 중 가장 공포소설에 가까운 작품이면서 성장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스탠 바이 미'의 본격 공포 버전이랄까.

11/22/63(SF·미스터리·대체역사) : 이 괴상한 제목은 케네디가 암살된 날짜. 그 암살을 저지하려 시간 여행을 하는 남자의 이야기. 킹 스타일의 역사소설?

미스터 메르세데스(스릴러) : 스티븐 킹이 레이먼드 챈들러 스타일의 하드보일드를 쓴다면? 킹의 필립 말로(챈들러 소설의 주인공 탐정)는 외로운 퇴직 경찰 빌 호지스다. 어느 날 그에게 살인마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편지가 날아든다. '파인더스 키퍼스', '엔드 오브 와치'로 이어지는 삼부작의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