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간 최초의 시계 오메가, 나사 탐험 따라 6번 달 착륙
1∙2차 대전에서 영, 미, 프랑스 군인 시계로 공급
영화 '007' 시리즈의 본드 시계, '덩케르크'에서 톰 하디도 착용해 화제
세이코 전자식 시계 따라하다 쓰레기 될 뻔 하기도
올림픽 기록 계측 공식 시계로 위상 높여… 100분의 1초 까지 측정
애슐리만 오메가 CEO "스마트워치는 전자 제품이지 시계가 아니다."
영화 007시리즈 ‘카지노 로얄’에서 본드 걸(에바 그린)은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의 시계를 보고 묻는다. “롤렉스?” 본드는 시크하게 답한다. “오메가.” 이 영화가 굳이 대사까지 넣어 ‘본드 시계=오메가’임을 확인시킨 데는 이유가 있다.
1962년 첫 번째 007시리즈에서 롤렉스로 시작한 본드의 시계는 1970년대와 1980년대 해밀턴과 세이코를 거쳐, 1995년부터 오메가로 정착했다. 오메가가 본드의 시계로 명성을 얻은 것은 협업에 가까운 마케팅 전략 덕분이었다. 롤렉스와 세이코가 단순히 시계를 제공한 데 반해, 오메가는 영화 제작 지원은 물론 시나리오에 어울리는 시계를 별도로 제작하는 등 공을 들였다.
◆ 영화 ‘007’ 시리즈 본드 워치로 대중적 인기 얻어
오메가는 매번 007시리즈 개봉에 맞춰 제임스 본드 시계를 한정판으로 출시한다. 2006년 카지노로얄에서 다니엘 크레이그가 착용한 한정판 1번 시계는 제네바에서 열린 경매에서 2억 원 가까운 금액으로 낙찰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영화 ‘덩케르크’에서 톰 하디가 오메가의 CK2129를 착용해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오메가는 1∙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미국, 프랑스 군인의 시계로 공급된 바 있다.
오메가(Omega) 시계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을 때 우주 비행사와 함께한 '문 워치'부터 영화 007시리즈에서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찬 '본드 워치', 1932년부터 지속한 올림픽 공식 타임키퍼까지.
오메가는 롤렉스와 함께 스위스 명품 시계 업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 롤렉스보다 제품 가격이 낮고 매출이 적어 이인자로 취급되지만, 동시에 롤렉스를 상대할 유일한 경쟁자로 지목된다. 롤렉스가 화려한 예물 시계로 이미지가 한정된 데 반해, 오메가는 더 역동적이고 다재다능하다. 호사가들은 롤렉스와 오메가를 벤츠 E클래스와 아우디 A6에 빗대어 표현하곤 한다.
◆ 달에 간 최초의 시계로 불리다
오메가는 럭셔리 시계 가운데서도 가장 역동적이고 개척 정신이 돋보이는 브랜드다. 스피드마스터(일명 ‘문 워치’)가 그 증거다. 1957년 탄생한 스피드마스터는 1969년 인류의 첫 달 착륙 미션을 함께한 시계로 대중에 각인됐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원래 자동차 경주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견고한 구조와 정확한 기능성으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 탐험을 위한 첫 시계로 채택됐다. 스피드마스터는 아폴로 11호에 탑승한 버즈 올드린이 차고 달에 발을 내디딘 이래, 6번이나 달 착륙에 동행했다. 올드린은 훗날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오메가 시계를 기증한 것을 두고 '빼앗겼다'고 회고했다.
국내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도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 X-33을 찼다. 오메가코리아 관계자는 “스피드마스터가 오메가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류의 도전과 가치’라는 브랜드의 철학을 대변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스피드마스터의 신규 버전을 계속해서 선보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 고급시계를 대량 생산해 차별화… 연간 70만 개 생산
오메가는 1848년 시계장인 루이 브란트가 스위스 라쇼드퐁에서 창업했다. 당시 루이 브란트가 만든 시계는 하루 시각 오차가 30초밖에 안 될 정도로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했다. 1894년에는 모든 부품을 표준화해 쉽게 호환하고 수리할 수 있는 회중시계 ‘칼리버’를 출시했는데, 이는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회중시계를 대중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브란트 공방은 스위스를 대표하는 시계 업체로 성장했고, 사명을 그리스어로 ‘완성’을 의미하는 오메가(Ω)로 바꿨다.
오메가는 론진, 라도 등과 함께 스와치그룹을 대표하는 브랜드다. 그룹 내 매출 비중은 28%로 대중 브랜드인 스와치(38%)보다 낮지만, 이익률은 47%로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시계의 평균 가격은 500~1000만 원대다.
오메가의 모든 시계는 스위스의 브랜드 창립지 근교에서 제작된다. 오메가는 연간 70만 개의 시계를 생산한다. 고급 시계 브랜드들이 4~5만 개가량을 생산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장인정신을 담은 고급 시계를 대량 생산한다는 점에서 다른 럭셔리 시계와 차별화 된다.
◆ 세이코의 전자식 시계 따라하려다 쓰레기 될 뻔
오메가의 기술에 대한 열정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다. 오메가는 기술력을 유지하기 위해 모기업인 스와치 그룹이 운영하는 공동 R&D센터 외에, 별도의 R&D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오메가가 기술에 집중하는 이유는 뼈저린 ‘흑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1969년 일본 시계업체 세이코가 세계 최초로 쿼츠 시계(전자식 시계)를 내놓으면서, 시계 시장을 장악하던 스위스 기계식 시계의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이에 오메가는 100년간 쌓은 기계식 시계 노하우를 버리고 저가 쿼츠 시계 개발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쿼츠 시계에 대한 노하우가 없던 오메가의 시계는 호응을 얻지 못했고, 결국 명품이라는 위상마저 잃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 레이날드 애슐리만 오메가 CEO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오메가 시계는 쓰레기(crap)였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후 오메가는 초심으로 돌아가 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했고, 1999년 동축 기술을 사용한 최초의 손목 시계를 선보여 시계 업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기계식 시계에 쓰던 일반 탈진기는 몇 년이 지나면 기름이 굳으면서 정확성이 떨어졌지만, 동축 탈진기는 기름 응고 문제를 해결해 기계 효율을 향상시켰다.
그 후 오메가는 다시 가장 잘 팔리는 시계 중 하나가 됐고, 스위스를 대표하는 명품으로 자리매김한다.
오메가의 기술력은 1932년 LA올림픽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올림픽 공식 타임키퍼라는 명함으로 증명이 됐다. 오메가는 1952년 타임 레코더를 개발해 100분의 1초에 가까운 시간까지 측정할 수 있게 했으며, 1968년에는 수영선수들이 시계를 직접 멈추도록 터치 패드를 고안해 타임키핑 역사를 새로 썼다.
스와치 그룹은 각종 운동경기 기록만 전담으로 하는 오메가타이밍이라는 계열사를 둘 정도로 초정밀 계측에 대한 연구를 아끼지 않는다. 오메가는 지난 5월 국제 올림픽위원회(IOC)와 파트너십을 2032년까지 연장할 계획을 밝혔다.
오메가는 홍보대사 선정에 있어서도 진정성 있는 협업을 추구한다.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와는 15년 이상 관계를 지속했다. 이와 관련해 애슐리만 CEO는 “기업의 얼굴인 홍보대사를 기용할 땐 그 사람의 성품과 카리스마를 비롯해 우리 브랜드 가치를 알아봐 주는지, 우리와 오래도록 함께 갈 수 있는 인물인지를 본다”고 말했다.
◆ 스마트워치는 전자 제품일뿐… 경쟁상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스위스 시계 시장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스와치 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스와치 그룹의 지난해 순수익은 47% 감소한 5억9천300만 스위스프랑(약 7060억 원), 매출은 전년 대비 11% 줄어든 75억5천만 스위스프랑(약 8조9887억 원)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 스와치 그룹 순 매출은 전년 대비 1.2 % 증가한 37억 스위스프랑(약 4조4,050억)으로 작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회사 측은 최근 몇 개월 동안 아시아와 중동 지역의 매출이 증가하고 있고, 오메가의 올림픽 마케팅 강화에 힘입어 올해 매출이 7∼9% 늘어날 것이라 기대한다.
스마트워치의 부상도 시계 산업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9월 애플 신제품 발표회에서 팀 쿡 CEO는 "애플워치는 판매량 기준으로 롤렉스에 이어 세계 2위 시계 브랜드가 됐다"고 발표했다. 오메가는 3위였다.
정작 오메가는 스마트워치를 경쟁 상대로 보지 않는다. 애슐리만 CEO는 “기술만 있을 뿐 역사와 정신이 없는 스마트워치는 경쟁 상대가 아니다”라며 “스마트워치는 전자 제품이지 시계가 아니다. 오메가는 대대손손 물려 주는 유산이지만, 애플워치를 자식에게 물려줄 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메가도 디지털 세대를 겨냥한 새로운 시도를 수용하고 있다. 올해 1월 오메가 인스타그램 채널을 통해 공개한 스피드 튜즈데이는 홈페이지에서만 예약 판매를 했는데, 준비된 2012개가 4시간만에 완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