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독자는 신경림의 시가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고 물리지 않는 시라고 말한다. 시뿐만이 아니라 삶도 그러하다."
소설가 이경자(69)씨가 신경림(82) 시인을 취재해 쓴 평전 '시인 신경림'(사람이야기)을 냈다. 시집 '농무(農舞)'로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해 온 시인이 지금껏 살아온 나날을 구수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문학사에 남을 시집 '농무'에 얽힌 일화가 흥미롭다. "1973년, 그는 그동안 발표한 시들을 모아 시집을 만들었다. 책을 펴내 주는 곳이 마땅치 않아 500권을 소위 '자비 출판' 했다"는 것. 채 마흔이 안 된 시인은 이름 없고 가난한 글쟁이였다. 그러나 2년 뒤 창작과비평사에서 '창비 시선'을 기획해 첫 호로 '농무' 증보판을 내면서 신경림 시인의 시대가 화려하게 열렸다.
시인은 유신 시대를 살면서 악몽을 자주 꿨다고 한다. "끝도 시작도 없는 길을 걷고 또 걷는 꿈을 꾸다가 흠뻑 젖어 깨는 일, 눈보라 속을 가는 꿈, 수염이 텁수룩한 중년의 겁먹은 눈을 가진 남자, 그리고 개가 세 마리나 덤벼드는 꿈…그저 개꿈이란 없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무엇에 대한 암시이거나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처럼, 고인 삶의 찌꺼기들이 이렇게 토악질을 하고 트림을 하는 것이었다"고 소설가 이경자씨는 묘사했다.
이씨는 신경림을 '길 위의 시인'으로 그려냈다. 시인의 대표작으론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라며 시작하는 시 '목계장터'가 꼽히기 때문이다. 노년에 쓴 시 중엔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는 시 '낙타'가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