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소년을 잡을 수 없었다
2014년 한 지방 도시에서 조카가 50대 고모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부모를 일찍 여읜 조카는 유일한 보호자인 고모가 "게임을 너무 많이 한다"며 혼을 내자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조카는 범행을 숨기려고 목격자인 동생마저 살해하려 했고, 고모의 휴대폰으로 고모 지인에게 '우리 여행 가니 찾지 마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지인의 신고로 이튿날 오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범인인 조카를 보고 큰 혼란에 빠졌다. 조카 A(13)군은 '촉법소년'이었기 때문이다. ▶기사 더보기
세간을 경악하게 했던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공범 박모(19)양과 김모(17)양은 지난 8월 결심 공판에서 검찰로부터 각각 무기징역과 20년형을 구형 받았다. 이들은 초등생 여아를 유인 후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 유기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 밝혀진 범행 동기와 행각들이 기괴하고 잔혹해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김양은 범죄를 공모하고 직접 살인 행위를 했음에도 무기징역을 받은 박양과 달리 20년형을 구형 받았다. ▶기사 더보기
지난 9월 1일 다른 여중생을 폭행한 사건이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졌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부산 여중생 폭행'이 올랐다. 피투성이가 된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여중생의 사진을 보며 많은 사람이 공분했다. 부산 사상 경찰서는 가해 여중생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검찰과 법원 역시 "사건이 포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며 구속을 결정했다. 해당 학생들은 만 14세가 넘었기 때문에 형사 처벌의 대상이지만 가급적 구속을 제한하는 소년법에서는 이례적 결정이다. ▶기사 더보기
경기 화성동부 경찰서는 지난 6월 9일 A(17)군 등 고교생 3명을 형사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 혐의는 공무집행방해였다. 경찰에 따르면 A군을 비롯한 10대 18명은 5월 21일 새벽 경기 오산시 한 공원에서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웠다. 경찰관들은 귀가를 설득했지만 A군은 경찰관 멱살을 잡는 등 폭행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관은 테이저건을 사용해 A군을 체포했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 학생들은 본인이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범죄를 저질러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거나 당당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기사 더보기
청소년보호법과 소년법
충격적인 청소년 범죄 행각이 드러나면서 "청소년들을 어리다고만 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관련 법은 청소년 보호법과 소년법이다. 두 법 모두 성인이 되지 않은 미성년자, 청소년들을 보호와 교육의 대상으로 보는 데서 출발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다. 현재 소년법 폐지를 주장하는 청원은 26만건이 넘었다.
청소년보호법 : 만 19세 미만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매체물과 물질을 규제하고 폭력이나 학대와 같은 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구제하는 것이 목적이다. 청소년에게 친권을 갖는 친권자, 보호자, 그리고 국가 및 사회 기관 시설, 기타 일반 성인들은 유해 매체나 식품 접촉과 유해환경 등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를 어긴 성인은 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유해 매체 및 환경을 접한 청소년은 처벌받지 않고 보호처분이나 선도 정도에 그친다.
소년법 : 청소년보호법이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소년법은 만 19세 미만 청소년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적용하는 법이다. 죄를 범한 미성년자는 성인과 달리 징계보다 교육의 관점에서 인도하도록 되어 있다. 죄질이 가벼울 때는 훈방, 사회봉사, 보호자 보호조치 등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는 소년분류심사원이나 소년원 등의 기관에서 검사 및 교육을 받도록 한다.
같은 미성년자라도 연령대별로 처분 수위를 나누고 있다.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만 10세 이상에서 만 14세 미만의 청소년은 촉법소년, 만 14세 이상에서 19세 미만 청소년은 범죄소년이라고 한다. 촉법소년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범죄소년은 강력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형법에 의해 처벌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지만 그 수위가 성인보다 낮다. 예를 들어 살인, 강도, 강간과 같은 중범죄를 저질렀을 때 성인이라면 무기징역 또는 사형까지 선고될 수 있지만 19세 미만 소년범은 최고 20년까지만 선고할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른 소년에 대해서 성인과 다른 조치를 취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부터다. 1942년 2월 일제는 전쟁 때 병력 차출을 위해 '조선소년령' 선포하고 거리의 부랑 청소년을 모아 교육하는 감화원을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1958년에는 법률 제489호로 '소년법'이 제정되면서 죄를 범한 소년, 형벌 법령에 저촉된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자, 10세 이상의 소년에 대한 처분, 보호 등에 대한 세부적인 조항이 만들어졌다. 이후 1963년 7월, 1977년 12월, 1988년 12월, 1995년 1월, 2008년 1월과 6월에 개정이 있었다.
"법이 관대해서는 안된다" 한목소리
국회에서도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지난 7월 18세 미만 청소년들이 존속살해 등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르면 성인과 똑같이 사형·무기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어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6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형법, 소년법,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 등 3개 법안에 대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발의된 개정안에 따르면 형법에서 처벌 대상인 '형사 미성년자'의 최저 연령은 현행 만 14세에서 만 12세로 낮아진다.
또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에 대한 형량도 높였다. 개정안에는 소년범의 법정 상한형을 20년의 징역 또는 장기 15년, 단기 7년으로 제한한 특강법 조항을 잔혹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법안이 통과되면 만 12세인 초등학생이 강력 범죄를 저질렀을 때 법원은 최고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게 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5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잔인한 여중생 폭행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극악무도한 청소년 범죄에 대해 예외적으로 중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인들도 기존 소년법 및 청소년 보호법 개정 및 폐지에 대해서 입장을 밝히는 가운데 12일 문재인 대통령도 소년법 개정 논의를 지시했다.
소년법은 해외에서도 논란이 되는 사안이다. 대대수 나라가 만 12~14세 정도의 아동을 소년법을 적용할 수 있는 기준으로 보고 있는데 최근 들어서 연령 기준이 점점 낮추고 있는 추세다. 일본은 지난 2000년 형사 책임 연령을 만 16세에서 만 14세로 낮췄다. 또한 만 16세 이상의 청소년이 살인을 저질렀을 경우 형사재판에 넘긴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지난 2007년에는 소년원 송치 대상을 11~12세까지 확대했다. 형량도 점차 강화돼 지난 2014년에는 최대 15년까지만 선고가 가능했던 유기징역형을 20년까지 늘렸다. 18~19세의 청소년의 경우에는 소년법을 적용받지만, 형량은 감형 없이 성인과 동일하게 정해진다.
미국 역시 18세 미만 소년범은 소년법의 적용을 받지만 강간, 살인 등 강력 범죄의 경우에는 예외 조항을 둔다. 소년범이라도 살인을 저지르면 무기징역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2500여 명에 이른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한균 인권·미래첨단연구실장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영국·일본 등 선진국에서 청소년 범죄가 갈수록 흉포해지고 심각해져 형사처벌 연령을 낮추는 등 강력 청소년 범죄들에 대해선 처벌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10대 범죄가 흉악해지고 재범률이 높아지자 2007년 형사 처벌을 하지 않는 '촉법소년' 연령 하한선을 기존 12세에서 10세로 낮췄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청소년 흉악 범죄가 사회적 논란이 될 때마다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사 더보기
전문가들의 생각은?
현재 소년 범죄 중 문제되는 사안은 '실수'성격이 아니라 어른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잔인한 범죄들이다. 그렇더라도 처벌 수위를 높여 오래 가둬두는 게 답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중범죄의 경우 소년보호처분 대신 일반 형사처벌을 받는다. 실형선고를 받으면 소년원이 아닌 일반 교도소에 간다. 소년원과 교도소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소년원은 교화(敎化)가 주 목적이고, 외부와 격리된 '학교'에 가깝지만 교도소는 범죄자를 사회와 분리 수용하는 곳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소년범을 소년원이 아닌 교도소에 보내면 성인 범죄자들과 섞여 온갖 범죄를 배워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기사 더보기
보호관찰관들은 "소년범이 태어날 때부터 '악마'나 '괴물'은 아니었다"고 했다. 오히려 범죄를 일으키기 전부터 폭력 성향을 수차례 드러내 보였을텐데, 가정이나 학교에서 바로잡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말한다. 때문에 범죄소년들을 가장 가깝게 지켜보는 보호관찰관들은 지금까지 소년범 처벌 수위를 성인범 수준으로 강화하는 데는 부정적이다. 교도소에 들어가서 더 흉악한 범죄자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관대한 처벌에도 회의적이다. 교육 차원에서라도 소년범들이 죄의식을 느낄 정도의 처벌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만 14세 미만은 강력 범죄를 저질러도 무조건 형사 처벌을 면제받는다. 14세 이상이라도 성인에 비해 처벌 수위가 상당히 낮다. ▶기사 더보기
저도 엄벌주의에 속하고 흉악범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처벌하자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소년법을 폐지하면 성년과 미성년자를 동등하게 취급하게 되는데 이는 대한민국 법체계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미성년자는 그의 능력과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나이를 기준으로 법적으로 성인과 다른 취급을 받는다. 그 배경에는 미성년자와 성년자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게 하는 것은 소수와 약자 보호 입장에 맞지 않으므로 특별한 취급을 해야 한다는 사상이 깔린 것이다. 이는 전 세계 모든 법체계를 지배하는 원칙이다.
소년법을 폐지하는 것은 미성년자에 대해 성인과 동등한 취급을 하자는 건데 그렇게 되면 다른 법 영역에서도 동등한 취급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14세면 어른인데 동등하게 처벌하자'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러면 미성년자들이 '선거권부터 달라'고 나올 수도 있지 않겠나. 현재 미성년자들은 선거권이 없는 것은 물론, 민법상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야 유효한 법률행위가 가능하고 일정한 연령 이하면 노동도 하지 못하는 상태다.
따라서 형의 상한을 높이거나 소년원 송치 기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소년법을 개정하는 건 몰라도, 성인과 동등한 취급을 하는 방향으로의 개정이나 폐지는 전체 법체계와 이념상 신중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기사 더보기
사진 및 이미지 출처 : 조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