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한 건축'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알록달록한 색깔을 사용하고, 동물이나 의인화된 캐릭터로 장식한 동화풍 디자인이다. 서울 월계동 중랑천변 한내근린공원에 지난 3월 세워진 '한내 지혜의 숲'은 그런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망가진 분수대가 방치돼 사람들로부터 외면받았던 작은 공원을 리모델링해 어린이 도서관을 지었다. 화려한 색이나 형태 대신 '열린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밖에서 보면 작은 박공지붕 집 여러 채가 오밀조밀 모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은회색 알루미늄 소재로 마감한 외관은 두드러지지 않지만, 신발을 벗고 실내에 들어서면 공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높이가 조금씩 다른 지붕 사이 틈으로 햇빛이 비치고 주위의 숲이 내다보인다. 사무실·화장실처럼 독립성이 중요한 공간을 빼면 실내가 문 없이 연결돼 있다. 실내를 열람실·놀이 공간 등으로 사용하면서 다른 이용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했다.
설계는 건축사무소 '운생동' 장윤규(53)·신창훈(47) 공동 대표가 맡았다. 2002년 운생동을 설립해 함께 운영하고 있는 국내 대표적 콤비 건축가다. 최근 현장에서 만난 두 건축가는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창의력을 기르고 자연을 친숙하게 접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이 공간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조금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이 건물은 내부로부터 지었다"고 했다. "외부의 형태를 정하고 거기 맞춰 가구나 집기를 들이면 결국엔 따로 놀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한내 지혜의 숲은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가구인 책장의 디자인에서 출발했습니다." 벽면을 가득 메우고 경사 지붕의 안쪽까지 타고 올라가도록 제작한 책장의 디자인이 그대로 건물의 형태가 됐다. 지붕 부분에는 책을 꽂을 수 없지만, 천장에 지저분하게 매달리기 마련인 조명을 깔끔하게 정리해 군더더기를 없앴다.
두 건축가는 요즘 잇따라 수상(受賞) 소식을 듣고 있다. 이 건물은 올해 서울시건축상 대상과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거리마당상(문체부장관상)을 받았다. 한국건축가협회에서 매년 완성도 높은 건축물 7개를 선정하는 '베스트7'에도 포함됐다.
[장윤규,"도시 전체와의 교감 뛰어날수록 좋은 건축"]
한내 지혜의 숲은 건축적 완성도와 공공성을 동시에 살린 작품이다. 신창훈 대표는 "지역 주민들이 설계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운영에도 참여하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처음 노원구의 의뢰는 도서관을 지어달라는 것이었지만 주민들은 동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 기능도 원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카페와 어린이들을 위한 방과 후 활동 공간을 추가하고 주민들로 구성된 자치위원과 자원봉사자들이 운영을 맡았습니다."
최근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도시 재생'과 관련해서도 시사점을 준다. 한내 지혜의 숲은 면적이 359.37㎡(약 109평)인 작은 건축물이다. 장윤규 대표는 "작은 곳부터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막대한 돈을 들여서 도시 구조를 바꾸는 일이 전부는 아닙니다. 주민들로부터 외면받았던 동네 곳곳을 찾아내 변화시키고 이용자들의 생활을 바꾸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