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트륨 함량을 비교하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라는 문구가 라면 포장지에 붙어 있다(왼쪽 사진 동그라미). 스마트폰에 QR 코드 앱을 내려받은 뒤 읽어야 오른쪽처럼 막대그래프 정보를 보여준다.

주부 하은지(40·경기 고양)씨는 지난 27일 마트에서 라면을 고르다 낯선 문구를 발견했다. '나트륨 함량을 비교하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영양 성분이 깨알같이 적힌 포장지 구석에 쓰여 있었다.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에겐 무용지물 아닌가? 설령 있다고 해도 소비자를 왜 번거롭게 만드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5월 19일 '나트륨 함량 비교 표시제'를 시행한 지 100여 일이 지났다. 라면·국수·냉면·햄버거·샌드위치 등 5개 식품에 포함된 나트륨 함량을 표준값(분야별 매출 상위 5개 제품의 평균값)에 견줘 보여주는 제도다. 기존에 밀리그램(㎎) 단위로 표시했지만 그 수치만으론 다른 유사 제품에 비해 나트륨이 많은지 적은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국물형 라면의 경우 표준값은 1730㎎이다. 2015년 매출 상위 5개 제품을 기준으로 뽑았다. 식약처는 해당 제품들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그중 나트륨이 가장 적은 라면은 너구리(1480㎎)로 확인됐다. 현재 주요 라면 나트륨은 신라면 1790㎎, 안성탕면 1790㎎, 삼양라면 1790㎎, 진라면 1860㎎, 스낵면 1710㎎ 등 대부분 표준값을 웃돈다.

나트륨 함량 비교 표시제를 전후한 라면 판매량을 이마트에 의뢰했다. 올해 1월부터 5월 18일까지는 전년 동기 대비 9.3% 판매가 감소했지만 5월 19일부터 8월 27일까지는 전년 동기 대비 0.4% 감소에 그쳤다. 이마트 홍보팀은 "비교 표시제 이후 저염(鹽) 상품에 대한 선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농심은 (나트륨이 적은) 너구리 판매량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라면은 나트륨이 많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소비하는 식품이다. 롯데마트 홍보팀은 "하얀 국물 라면, 매운 볶음 라면 등 새로운 맛이나 면발 개선 같은 식감 변화에 비하면 이번 비교 표시제가 시장에 끼친 영향은 미미하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정책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표시 방법이라는 지적이다. 농심·삼양식품·오뚜기 등 라면 제조사들이 표준값 대비 나트륨 함량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막대그래프 대신 모두 QR 코드로 표시하고 있다. 이들은 정책 시행 전 공청회 등에서 막대그래프가 포장지에서 차지하는 면적과 디자인을 문제 삼으며 QR 코드 방식을 요구했고 이를 식약처가 수용했다. 주부 심현주(40·서울 행당동)씨는 "라면은 습관적으로 소비하는 상품인데 QR 코드를 스캔해야 알 수 있다면 사실상 정보를 숨긴 셈"이라며 "식품 안전에 예민해진 시대에 식약처도 업체도 그저 생색만 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농심 홍보팀은 이에 대해 "신라면 나트륨 함량의 경우 2007년에 2100㎎에서 단계적으로 줄여 현재는 1790㎎"이라며 "라면 제조사들은 지속적으로 나트륨 저감에 힘쓰고 있고 그 변화를 즉각 반영하려면 QR 코드가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영양 시대의 종말'을 쓴 이대택 국민대 교수는 "양식이 있는 식품 회사라면 모든 영양 정보를 소비자 입장에서 불편하지 않게 전달해야 한다"며 "QR 코드라는 칸막이를 걷어내고 간명하게 보여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3890㎎으로 세계보건기구(WHO) 권장치(2000㎎ 이하)보다 배가량 높다. 고혈압·심장병·뇌졸중·만성신부전 등의 원인으로 꼽힌다. 나트륨 함량 비교 표시제는 덜 짠 식품 쪽으로 소비자를 유도하는 '소금과의 전쟁' 정책 중 하나다. 식약처 식품안전표시인증과 신영희 사무관은 "비교 표시제에 대한 소비자 인식 조사를 연말에 해서 문제 있는 부분은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