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케첩하면 토마토소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케첩이 토마토소스'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다. 그전의 케첩은 버섯으로 만들기도 하고, 호두로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또 그 훨씬 전에는 생선 액젓이 케첩의 주재료였다고 하니 케첩의 변화가 새삼 새롭다. 케첩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소스가 된 것일까.
기원
토마토케첩은 태국의 남플라, 베트남의 느억맘 같은 생선 소스가 그 시초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멸치 액젓이 서양으로 건너가 토마토케첩이 됐다는 것이다. 케첩을 만드는 여러 재료를 봐도 생선 액젓은 찾을 수조차 없는데 무슨 근거로 토마토케첩의 뿌리는 아시아의 생선 소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답은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찰스 록키어라는 영국인이 1711년에 쓴 라는 책에는 "가장 좋은 케첩은 통킹에서 온 것", "케첩은 중국에서 만드는데 값이 매우 싸다"고 적혀있다. 베트남의 통킹만에서 만드는 생선 젓갈이 가장 맛있다는 것과 현지에서는 케첩이 비싸지 않다는 내용으로, 케첩이 아시아에서 건너온 무역품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기타 다른 문헌에서도 17세기 네덜란드와 영국 동인도 회사 소속의 선원들이 유럽에 가져간 생선 액젓이 케첩으로 발달했다는 것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옥스퍼드 영어사전도 '케첩'의 어원을 <17세기 후반 중국에서 온 것. 광둥어 사투리로 '케첩'>이라고 밝히고 있다.
어원
케첩의 뿌리가 아시아의 생선 액젓이라는 주장의 또 다른 증거는 바로 이름에 있다. 토마토(Tomato)라는 영어 이름이 남미 원주민인 인디오 언어에서 비롯된 것처럼 케첩(Ketchup)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중국 남부와 동남아 일대에서 쓰는 민난어(閩南語)에서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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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무렵 민난어를 쓰는 중국 남부와 동남아에서는 생선 액젓을 케첩이라고 불렀다. 지역에 따라 케첩, 쿠에찹, 코에챱 등으로 발음이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생선 액젓을 뜻했다. 한자로는 규즙(鮭汁)이라고 적었는데, 1873년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가 발행한 민난어-영어 사전에서는 이 규즙을 '쾨챱(Koe-Chiap)'이라고 표기했다. 아시아의 생선 액젓을 유럽으로 가져가 퍼트리는 과정에서 이름도 그대로 전해진 것이다.
케첩의 원조라는 이 규즙을 뜻 풀이해보면, 규(鮭)는 복어나 연어를 나타내는 한자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생선요리를 가리킬 때 물고기 어(魚)자를 대신에 쓰는 한자다. 즙(汁)은 국물이라는 뜻으로 규즙은 생선으로 만든 즙, 즉 '생선 액젓'이라는 의미다.
■ 토마토 케첩은 언제 등장했을까?
케첩이 동인도 회사를 통해 유럽으로 건너갔을 때만 해도 토마토는 케첩에 쓰이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주로 호두, 버섯, 굴 등을 이용해 케첩을 만들었다.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사무엘 존슨이 1755년에 쓴 저서 에서 영국의 버섯 케첩은 초기 아시아에서 온 오리지널 소스의 맛을 모방하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된 음식이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케첩이 토마토를 만나게 된 건, 영국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면서다. 미국에서도 초기에는 버섯, 자두, 복숭아 등으로 케첩을 만들다가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이 끝난 후 토마토케첩이 등장하게 됐다. 전쟁으로 먹을 것이 부족해 빠르고 쉽게 키울 수 있는 토마토를 대량으로 재배해 공급했는데, 이 토마토에 입맛이 길들자 값싼
토마토를 재료로 만든 케첩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이어 1876년 토마토케첩이 처음으로 상용화됐다. 그 회사가 바로 세계 최대 케첩 회사인 하인즈다.
효능과 부작용
토마토케첩의 주재료인 토마토는 미국 가 선정한 '세계 10대 *수퍼푸드' 중의 하나다. 토마토에는 구연산, 아미노산, 루틴, 단백질, 칼슘, 철, 인, 비타민A, 비타민B1, 비타민B2, 비타민C, 식이섬유 등이 함유돼있다. 특히 비타민C는 토마토 한 개에 하루 섭취 권장량의 절반가량이 들어있다. 토마토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비타민 성분은 성인병이나 백내장, 당뇨병 등을 예방해 주는 효과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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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토마토에는 리코펜과 베타카로틴 등 항산화 물질이 많이 들어있다. 토마토케첩을 먹으면 생으로 토마토를 먹을 때보다 리코펜을 2배 이상 섭취할 수 있는데, 리코펜은 심근경색, 유방암, 전립선암, 소화기 계통의 암 등 각종 암의 발생률을 낮춰준다.
토마토케첩은 토마토 농축액이라고 할 수 있어 몸에 이로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케첩을 만들 때 첨가하는 설탕과 소금의 함량이 높다는 문제점이 있다. 토마토케첩의 식품 라벨을 보면 토마토페이스트 다음으로 당분이 많이 사용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유기농 케첩, 국내산 토마토케첩도 마찬가지다. 토마토케첩을 많이 먹으면 당과 나트륨의 과잉섭취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토마토 하루 한 개 먹고, 좌욕 하면 '전립선 튼튼' ]
토마토 케첩 O,X 퀴즈
17세기 당시 동인도 회사는 후추를 비롯해, 생강, 계피 등의 각종 향신료와 여러 차(茶)들을 팔아 돈을 벌었는데, 동양에서는 흔한 소스인 생선 액젓도 유럽에서는 동양에서 온 조미료로 비싸게 팔렸다. 아시아의 생선 액젓이 당시 유럽에서 얼마나 비싸게 팔렸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758년 엘리자 스미스가 쓴 요리책 를 보면 상당히 고가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아시아의 고가 수입품인 생선 액젓의 대체품을 만드는 레시피가 나오는데, 들어가는 재료가 유럽 멸치인 안초비에 정향, 생강, 후추다. 18세기에는 정향, 생강, 후추도 고급 향신료였기 때문에 생선 액젓이 고급 조미료였음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케첩 점유율 70%를 유지하던 하인즈는 2000년대 초 40%초반까지 점유율이 떨어졌다. 위기감에 나온 전략은 아동 소비자를 겨냥한 컬러 마케팅. 130년간 붉은색 토마토 케첩을 만들던 하인즈는 2000년 10월 녹색 케첩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녹색 케첩은 케첩 소비의 60%이상을 차지하던 아동 고객들의 호기심을 채우며 미국내 점유율이 51%까지 올랐지만, 역시 케첩은 빨간색이라는 인식을 넘지 못하고 얼마후 단종됐다.
시판되는 제품 중 대다수는 주원료인 토마토를 외국에서 공수하거나 수입산 토마토 페이스트 사용한다. 국내산 토마토로 케첩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국내산 토마토로 케첩을 만드는 업체도 있다.
국내산 토마토로 케첩을 만들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째는 토마토 종자의 차이다. 국내에서는 생식용 토마토가 주로 재배된다. 하지만 케첩이나 통조림 등을 만들 때는 플럼 토마토라고 하는 가공용 토마토가 더 많이 이용된다. 가공용 토마토는 감칠맛 성분인 글루타민산이 생식용 토마토의 배 이상으로 풍부하고, 리코펜 함량이 높아 색도 더 빨갛다.이 때문에 국내산 토마토로는 케첩을 만들지 않는다.
둘 째는 가격 차이다. 시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일반 토마토케첩 300g(튜브형) 가격은 980원인데 비해 국내산 토마토를 사용해 만드는 생협 제품은 280g(튜브형)이 4650원이다. 5배 가량 차이가 나다보니 국내산 토마토로 케첩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마토만 생각하면 과연 토마토만 가지고 케첩의 진한 빨간색을 낼 수 있을까 의심스러워진다. 많은 사람들은 케첩이나 토마토 주스에 색소가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토마토 가공식품의 붉은 색깔은 천연의 색상이다. 케첩을 만드는 데에는 리코펜 함량이 높은 가공용 토마토를 사용하기 때문에 따로 색소를 넣지 않아도 짙은 붉은색을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케첩의 붉은색은 순수한 리코펜 색이다.
■출처
토마토 이야기(2003, 뿌리와이파리)
토마토 (2010,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