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모든 분야가 진화론의 노예"...'창조과학회' 활동
靑 "종교관은 공직자 지명 기준 아니다"
과학기술계 "'창조과학'은 종교와 과학 구별 못한다는 뜻" 우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후보자가 진화론을 부정하는 기독교 단체인 '한국창조과학회' 이사직을 수행하며 적극 활동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종교와 과학의 영역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후보자가 과연 국가의 중요 의사 결정을 담당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그는 2007년 창조과학학회 학술대회에서 "이 사회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교육, 연구, 언론, 법률, 기업, 행정, 정치 등 모든 분야에 성경적 창조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배치가 필요하다"고 말한 사실이 조선비즈 취재결과 추가로 드러났다. 그는 이 당시 "오늘날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진화론의 노예가 되었다"라면서 근대 자연과학의 성과를 부정하는 발언도 했다.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철학을 갖고 있는 박 후보자의 공직 수행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청와대는 박 후보자에 대한 비판을 개인적인 신앙에 대한 문제제기 정도로 여기면서, 인사검증 실패에 대한 방어에 급급하는 모습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5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후보자의 창조과학회 활동 이력을 파악하고 있었다"면서도 "개인이 갖고 있는 종교가 공직자를 지명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종교관이 문제가 된다면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박 후보자 측의 해명을 듣는게 맞다"고 덧붙였다.
◆ '창조과학', 구약성서 문자 그대로 수용…"노아 홍수의 지질학적 증거들"
창조과학(scientific creationism)은 기독교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접근 방식을 취한다. 성경 내용을 과학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각종 이론적 논리를 개발하고 이를 확산시키기 위한 경향의 활동을 한다. 진화론에 입각한 근대 자연과학 이론체계는 부정한다.
한국창조과학학회는 홈페이지에서 "인간, 생물체, 우주 등에 내재된 질서와 조화가 우연이 아닌 지적 설계에 의한 창조물임을 과학적으로 증거하고 이 시대가 만물에 기원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갖고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며 경외하도록 하는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자신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 이 학회는 ▲압도적인 노아 홍수의 지질학적 증거들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부정되고 있는 수십억년의 지구연대 ▲진화를 부정하는 살아있는 화석들 등을 홈페이지에 추천자료라며 게시했다.
문제는 창조과학회가 단순한 종교 모임이 아닌 적극적으로 현실에 개입하는 단체라는 점이다. 학회는 홈페이지 소개글에서 자신들의 목표를 "이 시대 복음 전파의 커다란 장애물인 진화론의 과학적 허구성을 밝히고 창조의 과학적 증거들을 드러냄으로써 창조 신앙을 회복하게 하는 일"이라며 "이를 위해 창조론적 교육개혁을 통해 진화론만 가르치고 있는 공교육 기관에서도 과학적 증거를 통해 창조론을 가르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창조과학회는 1981년 학회 설립 후 꾸준히 학술대회 또는 세미나, 출판 사업 등으로 이론을 다듬고, 초중고교 교사등 대상 연수프로그램 및 초중고교생 및 대학생 대상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해왔다. 미국 내 창조과학 단체와 연계한 유학 및 장학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2년에는 고등학교 과학교과서 '시조새' 진화론 삭제 청원을 해 논란을 샀던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교진추)'의 배후로 꼽혔다. 당시 교진추의 진화론 삭제 시도는 거의 실현 직전까지 갔고, 과학저널 네이처(Natrue)가 "한국이 창조론자의 요구에 항복하다"라는 제목으로 이를 소개했다. 국제적 망신이었다. 결국 과학기술한림원이 "진화론은 과학적 반증(反證)을 통해 정립된 현대 과학의 핵심 이론 중 하나로 모든 학생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할 내용"이라고 나섰다.
한편 박 후보자 외에 가장 잘 알려진 창조과학회 소속 인사는 박근혜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과학분과에서 활동한 장순흥 당시 카이스트 교수(현재 한동대학교 총장)다. 당시에도 과학기술계 인사들과 야당인 민주통합당 소속 국회의원 등이 앞다퉈 장 교수의 인수위 참여에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청와대 "기독교인 과학자, 창조과학 궁금해 하는 사람들 있다"
청와대는 이같은 박 후보자의 활동에 대해 개인의 종교적 취향에 따른 활동이라는 입장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창조과학회에는 진화론과 대척점에서 싸우자는 분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과학자 중에서 기독교인들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넓은 의미에서 일종의 학문적 호기심"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20년간 학술 활동을 하고 학문적 성과가 있는 분인데, 창조과학이 이 분 학문적 성과에 영향을 미쳤다면 이미 걸러졌을 것"이라며 "그러나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의 할 일이 성과가 있는 기술, 학계에서 인정받고 검증된 기술을 갖고 창업을 돕는 것이기 때문에, 창조과학회 활동과는 다른 문제"라면서 박 후보자에 대한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후보자의 공개 발언 등을 살펴보면 창조과학학회 활동이 학문적 호기심 차원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는 창조과학회가 개최한 공개강연 등에서 적극적으로 진화론을 부정하는 행보를 보였다.
특히 2007년 6월 2일 연세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는 연사로 나서 "오늘날 자연과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진화론의 노예가 되었다"며 "이 사회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교육, 연구, 언론, 법률, 기업, 행정, 정치 등 모든 분야에 성경적 창조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배치가 필요하고, 1세대 창조과학자들의 뒤를 이을 젊은 다음 세대들의 대대적인 양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2013년에는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국제창조론컨퍼런스(ICC·International Conference on Creationism)에 참석했는데, 그는 학회 홈페이지에서 이 행사를 소개하면서 "ICC는 두 가지 목적이 있는데, 첫 번째는 일반 청중들에게 창조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발표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심포지엄 형식으로 창조과학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결과 또는 창조과학 교육에 관련된 이슈들을 심층 토론하는 것"이라고 밝혀 분명히 활동 취지를 이해하고 있는 모습을 드러냈다.
◆ "유영민 과기정통부장관도 '진화론' 입장 묻자 머뭇거리더니…"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의 과학기술 분야 인사를 둘러싼 의혹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각종 인선 등에서 과학기술계의 상식에 역행하는 결과물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박기영 전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낙마 후 또다시 벌어진 과학기술계 인사 난맥상이기 때문이다. 박 전 본부장 사태 당시에는 '청와대가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을 제대로 이해는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미 업무를 보고 있는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도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진화론에 대한 확고한 옹호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아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유 장관은 당시 청문회에서 여당 의원의 질타를 받은 뒤에야 마지못해 "진화론과 창조론 중 어느 것을 믿느냐고 오해했는데, 그러면 종교나 과학에서 예민한 문제라서 (입장 밝히기) 적절하지 않다고 한 것"이라며 "진화론만 이야기 한다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어 교과서에 실리는 것에 반대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이에 대해 "성경을 종교적 차원에서 신뢰한다는 것은 종교인으로서는 당연하지만 '창조과학'이라는 말을 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며 "종교적 신념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을 경우 행정가로서 국가를 위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 교수는 "더 심각한 것은 이 정부가 과학기술에 대해 보여주는 자세"라며 "너무 혼란스럽다. 과연 이 정부가 참여정부때 추구하던 과학기술 중심사회라는 의미를 알고 계승발전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