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매체 '인디안 투데이'가 올린 시진핑 주석 풍자 동영상 중 일부.

지난 17일(현지 시각) 인도 방송 매체인 인디안 투데이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얼굴을 한 곰돌이 푸가 오성기 배경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 말춤을 추는 영상을 공개했다. 중국군과 인도군이 최근 인도 동북부 시킴 인근 도카라에서 국경 문제로 두 달 넘게 대치를 이어가자, 중국에 일종의 도발을 던진 것이었다.
그런데 인도는 세상에 하고많은 도발거리 중, 굳이 '곰돌이 푸'와 '강남스타일'을 택했을까. 귀엽다면 귀여울 수도 있는 이 두 요소가, 시 주석에겐 모욕이 되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곰돌이 푸의 사연
지난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 오바마와 시 주석 간 정상회담이 있었다. 그리고 이 날 찍힌 사진 중 하나가, 절묘한 구도 덕에 화제가 됐다.

디즈니 애니매이션 '곰돌이 푸'의 한 장면(왼쪽)과 지난 2013년 미-중 정상회담 당시 시진핑 주석과 오바마 대통령이 걷는 모습.

두 나라 지도자가 걷는 모습이 영국 작가 밀른(Alan Alexander Milne, 1882~1956) 원작 만화 '곰돌이 푸' 중 한 장면과 거의 똑같이 잡힌 것이다.
곰돌이 푸나 티거(호랑이)가 딱히 악역도 아니니, 최고 지도자를 소탈하고 친근하게 비춰주는 사진이라 평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 주석은 친근함보단 위엄있어 보이는 이미지를 선호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시 주석 찬양곡 '要嫁就嫁習大大这样的人(시집 가려면 시다다 같은 남자를 만나라)'가 나오자, 이듬해 '시다다(習大大·시 아저씨)' 표현 사용을 금지하는 칙령을 내린 적도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시 주석을 곰돌이 푸에 빗대는 풍자가 용납될 리 없었다. 이후 중국 웹에서 시 주석과 곰돌이 푸를 엮는 이미지는 모조리 검열 대상으로 잡히게 된다. 2014년 나온 시 주석과 일본 아베 총리 간 악수 사진 풍자그림, 2015년 군사 사열 풍자그림 등이 이러한 연고로 중국 당국 손에 걸러졌다. 지난달 17일엔 영국 경제신문 '파이낸셜 타임즈'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 곰돌이 푸가 검색 차단 대상이 됐다고 보도했다.

위쪽 좌우 사진은 '곰돌이 푸' 등장동물 이요르(당나귀)와 푸가 악수하는 장면(왼쪽)에 일본 아베 총리와 시진핑 주석이 악수하는 장면을 붙인 것. 아래는 사열 중인 시진핑 주석(왼쪽)을 곰돌이 푸에 빗댄 것.

다만 딱히 비하라고까지 느껴지진 않는 곰돌이 푸 그림에 이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건, 다른 이유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달 18일 미국 CNN 방송은 최근 중국이 벌인 곰돌이 푸 검열이 고(故) 류샤오보(劉曉波)를 의식한 결과라 주장했다.
류샤오보는 중국의 민주화·인권 운동가다. 중국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공로로, 지난 201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당연히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은 국민 입에 류샤오보가 오르내리는 상황을 극도로 꺼린다.

류샤오보(오른쪽)가 숨을 거두기 얼마 전 부인 류샤와 곰돌이 푸가 그려진 머그컵을 들고 건배하는 모습.

지난달 13일 투병 끝에 숨을 거둔 류샤오보는, 눈을 감기 전 사진 한 장을 남겼다. 부인 류샤와 곰돌이 푸가 그려진 머그잔을 들고 건배하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곰돌이 푸가 중국 반체제의 상징이 됐다는 게 CNN의 설명이다. 물론 과도한 해석이라는 게 중평이지만, 아무튼 여러모로 곰돌이 푸가 시 주석을 자극할 만한 소재인 건 분명한 듯하다.

#말춤이 미움받는 이유
강남스타일 또한 시 주석과 무관치 않다. 지난 2012년 11월, 미국 언론 워싱턴 포스트(WP)는 중국 최고 지도부 얼굴이 합성된 '강남스타일' 말춤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다가 중국 당국 검열로 차단됐다고 보도했다. 이 합성사진엔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던 시 주석, 원자바오 총리 등이 등장한다.

지난 2012년 중국 정부가 검열로 차단한 사진. 단체로 '강남스타일' 말춤을 추는 사진에 중국 수뇌부 인사들 얼굴을 합성해 넣었다.

당시 한 중국 언론은 "중국 지도자들 사진은 선전선동 관리자들이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지도부들이 대열을 짜고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는 모습은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평했다. 또한 워싱턴 포스트는 이를 보도하며 "중국 정부가 중국 1당 지배체제와 지도층의 적법성이 흔들릴까 두려워 우려하는 게 틀림없다"고 했다.
이런 사달이 있었으니 중국 정부에서 강남스타일 말춤을 달갑게 볼 리 없다. 인도 정부는 역으로 이를 노리고 중국을 겨냥한 도발에 강남스타일 춤사위를 써먹은 것이다.

#뜻밖의 검열
여담으로 곰돌이 푸와 강남스타일 말춤 이외에, 최근 중국에서 검열 대상이 된 콘텐츠가 하나 더 있다. 국내엔 퉁퉁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만화 '도라에몽' 등장인물, 자이안(ジャイアン)이다.

만화 '도라에몽'에 등장하는 인물 '퉁퉁이'.

앞서 언급한 둘과는 달리, 퉁퉁이 사진은 근본 없이 검열당하고 있다. 별 이유도 없이 잘려나간다는 것이다. 그저 퉁퉁이 외양이 시 주석과 닮은 데가 있어서일 거라 추정할 뿐이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20일 “웨이보를 포함한 중국 내 SNS에서 퉁퉁이가 검색되지 않는다”고 보도하며 “중국 정부가 올가을 공산당 대회를 앞두고 시 주석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될만한 거리를 모두 차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