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지구대 소속 박모(34) 순경이 위협을 가하는 주폭(酒暴·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제지하려다 상처를 입혔다는 이유로 거액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본지 8월 22일 자 A10면〉. 최근 범법자의 인권을 강조하다 보니, 공권력이 위축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일선 현장에서 나온다. 정당한 공권력 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발적 결과에 대해 경찰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은 '시민 안전'을 위해 일선 경찰의 판단과 행동을 적극 인정해 준다.
◇"공무 집행 적법성 직접 입증하라"
'공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했다'는 판단이 나오면, 경찰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같다. 한국과 미국 경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적법한 공무 집행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하느냐'에서 갈린다. 한국에선 경찰 개인이 CCTV 영상 등 객관적 증거를 확보해 자신의 행위가 정당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미국에선 현장에서 경찰 개인이 얼마만큼의 위협을 느꼈는지 등 주관적 판단이 중요하다.
2008년 김모(45) 경위는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식칼을 들고 난동을 부린 남성을 몸싸움 끝에 제압해 체포했다. 하지만 김씨는 오히려 직권남용으로 기소됐다. 남성이 식칼을 휘두르며 위협을 가한 위치가 CCTV의 사각지대여서 영상 증거가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 일로 2년 동안 재판을 받아야 했다.
한국이 '부당한 공권력'을 판단할 때 증거를 중시하는 이유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라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당시 경찰이 느낀 위협감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위급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판단해 행동해야 할 때가 잦은데, 검찰이나 법원이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미국은 다르다. 미국 법원은 공무의 적법성을 심사하면서 '상황의 위험성에 관한 경찰의 주관적 판단'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치안 일선에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특수성을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시카고에선 최근 15년간 민간인 215명이 범인 검거 과정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지만, 경찰 개인이 기소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미국에선 범법자를 검거하다 다치게 해도 책임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종화 경찰대 경찰학과 교수는 "미국에선 저항하는 피의자에게 경찰이 물리력을 행사했다고 책임을 묻는 경우는 없다. 경찰이 현장에서 위협을 느꼈다고 생각하면 면책사유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 법원이 경찰 공무의 적법성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군사정권 시절 경찰이 각종 인권 탄압을 저지른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경찰을 '정당한 공권력의 주체'가 아닌 '불신 대상'으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인권보호 분야에서 경찰이 개선해야 할 점은 여전히 있지만 예전보단 많이 발전한 편"이라며 "경찰 공권력에 대한 권위가 실추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 경찰은 피의자에 강력 대응
지난해 공무 집행 방해 사범은 1만7293명으로, 이 중 70%가 주폭으로 추산된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술에 관대한 분위기 때문에 주폭을 입건해도 제대로 처벌받는 경우가 드물고, 경찰도 조사받는 게 귀찮아 넘어갈 때가 많다"고 했다. 주폭을 공무 집행 방해로 입건할 경우 조직에 부담을 준다고 생각하는 경찰도 많다.
미국은 주폭 등 피의자에 대한 대응 방침이 확고하다. 피의자보다 한 단계 높은 물리력을 쓰는 것이 허용된다. 주먹을 휘두를 경우 경찰봉을 사용할 수 있고, 칼을 들고 있으면 총을 쏘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에서 공권력이 막강한 이유는 '법 앞의 평등'을 강력하게 구현해 여러 인종으로 이뤄진 국가를 연방정부가 효율적으로 규율하기 위해서다. 미국인들이 강한 공권력을 당연하게 여기는 데에는 경찰의 엄정한 법 집행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된다. 지난 2013년 미 경찰은 민주당 소속 의원 8명이 이민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며 국회의사당 앞 도로를 불법 점거하자 수갑을 채운 뒤 모두 체포했다. 이 과정은 모두 TV로 생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