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는 물러설 데가 없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9차전 이란전(서울월드컵경기장·31일 오후 9시)과 최종 10차전 우즈베키스탄전(타슈켄트·9월 5일 밤 12시)에서 한국 축구의 운명이 사실상 결정된다.

한국은 남은 두 경기에서 최고의 전력으로 최상의 경기를 해야 한다. 러시아행을 달성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누구 하나라도 다쳐선 안 된다. '지상 과제'가 된 부상 예방을 위해 대표팀이 준비한 게 있다. 훈련 중 입는 특수장비, 이른바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다.

‘남자가 스포츠 브라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연히 부상을 막기 위한 특수장비다. 벼랑 끝에 몰린 한국 축구 대표팀은‘다치면 끝’이라는 심정으로 조심 또 조심하고 있다. 지난 21일 대표팀에 소집된 김진수(오른쪽)가 훈련에 앞서 운동량과 피로도를 측정하는 특수장비를 착용하는 모습.

신태용호는 이번 소집훈련부터 이 장비를 본격적으로 활용한다. 여자 선수들이 입는 '스포츠 브래지어'와 비슷한 전용 의류를 입고 등 쪽에 스마트폰 크기의 장비를 넣는다. 선수들의 훈련 장면이나 사진을 자세히 보면 등 부분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게 이 장비 때문이다.

이전 축구에서 기록 분석이라고 하면 눈으로 보고도 셀 수 있는 슈팅과 패스 수 정도였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호가 선수들의 가슴과 팔목에 심장 박동수 측정기를 채우고 체력 변화를 체크한 게 '과학적인 방식'으로 관심을 끈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그때와 수준이 다르다. 대표팀이 착용한 측정 장비는 55개의 인공위성과 통신해 50㎝ 이내 선수들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감지한다. 이에 더해 3차원으로 선수들의 모든 움직임을 측정한다. 축구 선수들은 점프했다 착지하거나 상대와 강하게 부딪히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흔하다. 특수장비는 선수가 받은 충격을 '숫자'로 파악해 팀에서 선수들의 피로도와 부상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관절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는 '급가속·급제동'도 측정 대상이다. 선수가 단순히 얼마만큼 뛰었는지를 체크하는 데서 나아가 어떤 속도로 뛰었는지까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장비에 자력계와 가속도 센서, 회전량을 측정하는 자이로스코프까지 탑재돼 있다. 장비 업체 관계자는 "400가지가 넘는 지표를 측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중한 신태용호, 이란전 정보 최대한 감춘다]

목적은 하나다. 데이터를 통해 선수들의 신체에 얼마나 무리가 갔는지 파악하고, 부상을 막기 위한 선수별 '맞춤형 훈련'을 계획하기 위해서다. 천문학적인 몸값의 선수들로 구성된 레알 마드리드, 토트넘, 바이에른 뮌헨, AC밀란 등 유럽 명문 축구단들이 이 장비를 착용하고 훈련한다. 대표팀에선 이 장비를 운용해 본 부산 아이파크 출신의 이재홍 코치가 신태용호에 피지컬 코치로 합류해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피지컬 코치가 매일 측정된 데이터를 보고 선수들과 개별 면담을 갖고 훈련량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축구협회는 이 장비에 더해 별도의 부상 방지 프로그램도 개발해 이번 대표팀부터 적용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다른 선수와 충돌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치는 경우를 분석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균형 잡기, 양쪽 다리에 고무밴드 끼우고 다리 벌리기, 기구 활용해 누워서 스트레칭 등 11가지 동작이 포함돼 있다. 대표팀 선수들은 매일 15분 동안 이 프로그램을 하고 나서야 훈련에 참가할 수 있다.

한편 남은 2연전 가운데 한국의 첫 번째 상대인 이란 대표팀은 오는 26일 입국할 계획이라고 협회에 통보했다. 이란은 A조 1위로 이미 러시아행을 확정했지만 통상 2~3일 전에 입국했던 전례와 비교해 이례적으로 빠른 5일 전 입국을 결정했다. 축구계에선 이란이 아시아 맹주를 놓고 경쟁했던 한국을 상대로 '결코 봐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