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면옥에서 점심을 먹으려면 늦어도 11시 45분에는 당도해야 한다. 자칫하면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 메밀국수를 기계로 뽑아 육수와 동치미 섞은 국물에 담아주는 그것, 냉면을 먹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 때도 있으나 어쩌겠는가, 을지면옥 냉면이 갑인 것을. 나의 여름은 을지면옥에 저당 잡혔다.

전당포 주인은 주 3회씩 온다고 특별히 자리를 마련해주지도 않는다. 그 선량한 얼굴은 그저 "오셨어요?" 한 뒤 "몇 분이세요?"라고 묻는다. 아마도 '많이 기다려야 할 것 같은 데 옆 공구상에서 펜치나 드라이버를 좀 사고 이따 오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것 같다. 실제로 을지면옥 냉면을 기다리다가 줄자나 펜치를 산 적도 있다.

운 좋게도 셋이 간 점심에 자리가 났다. 편육 한 접시를 먹는데 아무래도 부족한 것 같다. "편육 반 접시 더 주세요" 했더니, 놀랍게도 "반 접시 없어졌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한 접시 단위로 시켜야 한단 말인가. 내친김에 "그럼 소주 반병도 없어졌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반 접시와 반병을 주문할 수 있는 곳… 아, 님은 갔습니다.

처음 이 냉면집에 갔을 때―꽤 오래전이다―혼자 온 어르신들이 많아 놀랐다. 그분들은 편육 반 접시와 소주 반병을 시켜 드시곤 했다. 그 뒤에 국수를 시키는 것이다. 소주 반병은 플라스틱 병에 든 200mL짜리 소주였다. 그런 풍경은 서울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웠기에, 이 냉면집의 경쟁력이 단순히 면발과 육수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 냉면집에 줄곧 다니다 보니, 단골들은 오후 1시 넘어야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상대적으로 젊은 손님들이 너무 많아, 단골 노인들은 좀 한가해질 때가 돼야 오는 것이다. 어쩌면 메뉴에서 편육 반 접시와 소주 반병을 빼버린 을지면옥도 오후 1시 이후엔 반 접시, 반병 주문을 받을지 모른다. 나는 구부정한 허리로 계단을 혼자 올라 편육 반 접시와 소주 반병을 시키는 어른 옆에서 냉면을 먹고 싶다. 늘 주문을 받는 아주머니도 "원래 안 되는데, 특별히 드릴게요" 하면서 편육 반 접시를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