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설가 제프리 유제니디스(Eugenides·57)가 장편 '결혼이라는 소설'(김희용 옮김·민음사) 한국어판을 지난주 출간했다. 유제니디스는 2002년 소설 '미들섹스'로 퓰리처상을 받았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2011년 발표한 '결혼이라는 소설'은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미국 동부 명문대를 다닌 젊은이들의 사랑과 자아실현을 다뤘고,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짙은 작품이기도 하다. 90년대 이후 미국 문학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유제니디스를 이메일로 만났다.
―미국의 '7080세대'를 그린 소설을 왜 썼는가.
"작가가 체험에서 스토리를 끌어내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결혼이라는 소설'은 젊은이들이 대학에서 인생의 첫발을 내딛고, 졸업 이후 미래의 두려움에 대면해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80년대엔 미국 경제가 매우 나빠졌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평온한 시대를 산 인물보다는 불안과 공포, 욕망을 모두 느낀 인물들에 대해 쓰는 게 좀 더 극적(劇的)이라고 생각했다."
―이 소설은 여학생 마들렌이 미첼 등 두 남학생과 맺는 삼각관계를 3인칭 시점에서 그렸다. 여주인공 마들렌은 어떤 구상에서 나왔는가.
"마들렌은 제인 오스틴을 비롯해 19세기 영국 작가들의 연애 소설을 읽고 자랐다. 그녀는 지성과 낭만에 대한 기대 때문에 영문학을 전공한다. 프랑스 비평가 롤랑 바르트의 책 '사랑의 단상'에 매료돼 그처럼 지적(知的) 사랑을 갈망한다. 나도 영문학을 전공한 젊은 날에 그랬던 것이 기억난다."
―세 명의 주인공 중 가장 공감이 간 인물은 누구인가.
"나는 세 명의 주인공에게 내 여러 부분을 나누어줬다. 자전적으로는 미첼이 나랑 가장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미첼은 그리스계(系)이고 디트로이트 출신이며, 인도에 가서 마더 테레사를 도와 봉사활동도 했다. 나는 등장인물들이 어떤 철학이나 전형(典型)을 대변하도록 쓰지 않는다. 내가 쓰는 인물들은 상징이 아니다. 이 소설은 사랑 이야기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사랑에 빠질 때나 결혼할 때 꿈꾸거나, 평생 지니게 될 로맨스에 관한 꿈 이야기다. 우리가 로맨스를 어떻게 얻는지 형상화하려고 했다. 이 소설의 아이러니는 주인공들이 똑똑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일단 사랑의 고통을 피하지만, 결국 인간이기에 사랑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소설이 그린 대로 현대의 젊은이들에겐 낭만적 사랑이 힘든 것인가.
"위대한 문학 중엔 결혼에 대해 쓴 것들이 많다. 결혼이야말로 소설이 다뤄온 가장 위대한 플롯이었다. 18~19세기 영국 소설들은 여성이 배우자를 선택하기 위해 신중하게 플롯을 짜고 결심하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결혼 상대에 의해 삶 전체가 규정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이혼할 수도 있고, 사회단체나 종교 활동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로맨틱한 이야기의 영향을 받는다. 내 소설은 로맨스가 정신적 요인을 통해 우리 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이 소설은 문학과 종교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인공지능의 시대를 맞아 인문학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지난 25년간 거대 IT 기업 창립자들은 대부분 인문학에 흥미를 갖고 공부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역사적으로 일어난 일에 대해 생각하고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인문학을 포기하지 않을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