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충북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학대 신고가 들어왔다. 학대 가해자인 아버지도, 피해자인 열세 살 여자아이도 모두 상담원들에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4년 전 아버지는 말투가 어눌하다는 이유로 딸을 베란다에 가뒀다. 출동한 상담원에게 아버지는 "내가 아이를 계속 키우겠다"고 주장했다. 상담원이 몇 차례 아이 집을 찾았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필요 없다"며 문을 걸어 잠갔다. 결국 지난해 재학대 신고가 들어왔다. 아이는 그제서야 지옥 같은 집을 나와 학대아동피해쉼터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아동 학대 1만 8573건 중 아이가 학대 이후에도 가정에 남은 경우는 1만3506건. 그렇게 가정으로 되돌아간 아이 10명 중 1명은 재학대를 당해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돌아온다.

전문가들은 학대 아동을 관리하고 재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선 '친권 분리(아이를 친권자로부터 떼어 놓는 것)'를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전문 상담원을 늘려 부모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무지(無知)로 자녀를 학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美, 아동 학대 땐 일단 친권 제한

미국에서 1년 동안 부모의 친권이 박탈당한 사례는 6만4000여명(2014년 기준). 아동 학대 전체 발생 건의 9.5%에 달한다. 우리는 1%가 채 안 된다.

미국은 아동 보호라는 목적을 위해 친권을 적극적으로 제한한다. 재학대와 성적 학대, 부모의 알코올중독 같은 몇 가지 사례에서는 원칙적으로 친권을 제한하게 되어 있다. 부모가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고 개선할 때까지 친권을 제한할 수 있는 '일시 제한 조치'를 폭넓게 시행한다. 또 부모는 복지 기관의 사후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담당 상담원이 부모를 방문해 양육 방법을 교육하고 부모와 자녀 관계를 관찰한다. 이때 합격점을 받아야 친권을 되찾을 수 있다.

일본도 학대 피해 아동을 부모로부터 강제 격리하는 것을 더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아동보호기관이 격리 여부를 판단해 왔다. 하지만 조사 권한이 없고 병원·학교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이 때문에 격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판단하기 힘들었다. 지난해부터는 법원이 이런 업무를 담당해 피해 아동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고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이부진·임우재 아들 친권은 이사장이 갖는다"]

선진국이 이런 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건 사후 관리를 할 상담 인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미국 아동 보호 담당 인력은 총 3만4000여명으로, 상담원 한 명이 평균 10~15건 담당한다. 우리나라는 평균 60건으로 4배 이상 많다. 박명숙 상지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미국에선 주마다 다르지만 보통 담당자가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보호자, 피해 아동, 학교 선생님을 만나고, 이런 관리가 2~3년 지속된다"고 했다.

또 전문 위탁 가정이 많아 아이가 원래 집이 아니더라도 지낼 곳이 많다. 보통 일반 가정에서 심리치료 등 교육을 이수하면 전문 위탁 가정 자격을 얻을 수 있다. 2015년 기준 미국 학대 피해 아동의 22.9%가 이런 전문 위탁 가정에 맡겨졌다. 아이에게 일반 가정과 같은 따뜻함은 주되 학대 피해가 발생한 곳으로 돌려보내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친권 분리 안 하다 재차 학대 받기도

2015년 우리나라에서 피해아동보호명령에 따라 친권이 제한된 숫자는 25건이었다. 대부분 아이가 죽을 지경까지 갔던 극단적 케이스였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친권 분리·제한 자체도 2014년 특례법 제정 때부터 가능해져 이제 시행 2년차"라며 "아직 법원 판례가 적은 걸 감안해도 허용 건수가 극히 적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이를 가정에서 분리하고 부모 친권을 제한하지 않다가 재학대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국내 재학대 건수는 2010년 503건에서 2015년 1240건으로 5년 새 2.5배 늘었다. 재학대 중 부모가 가해자인 비율이 93%에 달했다. 신고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아동 재학대 비율은 훨씬 높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학대 피해 아동의 친권도 대부분 원래 부모에게 남아있다. 아이가 학대 가정에 남겨지는 건 '그래도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게 낫다'는 인식 때문이다. 때로는 아이가 학대 행위를 한 부모를 감싸며 집에 남겠다고 하기도 한다. "자신이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부모의 학대가 자신을 사랑해서 한 행동이란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친권 제한이나 격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상담원들이 자주 방문해 아이 상태를 확인해야 하지만 이조차도 쉽지 않다. 거리가 멀어 한 달에 한 번 방문하기도 빠듯한데,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말도 없이 집을 비워버린다. 이렇게 부모가 사후 관리를 거부해도 법원 명령이 있지 않은 이상은 강제성이 없다. 경기북부아동보호전문기관의 김병익 팀장은 "사후 관리를 받는 부모의 40% 정도는 연락이나 상담을 거부한다"고 했다.